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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공개된 ‘남산 한양도성 유적’ 직접 가보니

남산에 최근 특별한 전시관이 개관했다. 남산 길을 조용히 산책하던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바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다. 남산을 찾아 단풍 구경과 산책을 즐기던 시민들에게 100년 전 역사 유물을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 더해진 것이다.

사적 제10호인 서울한양도성은 조선 왕조의 도읍지인 한성부(서울의 옛 명칭)의 경계를 표시하고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성곽이다. 1396년 조선 태조 이성계는 전국에서 약 20만 명을 동원해 한양을 둘러싼 백악산(경복궁 북쪽에 있는 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과 그 사이 평지를 연결해 성을 쌓았다. 전체 길이 약18.6km. 대규모 성곽인 한양도성은 근대 도시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되었지만 본래의 가치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중요한 유산이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지난 11월 12일 시민들에 무료 개방되었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지난 11월 12일 시민들에 무료 개방되었다. ⓒ박찬홍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서울시에서 지난 2013-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구 2개소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신궁’ 배전 터와 방공호, 1968년에 설치된 둘레 20m의 분수대 등을 보존 및 정비해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특히 이 전시관은그동안 멸실된 줄 알았던 한양도성 남산구간의 성벽구간이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이 곳에 가면 조선시대 한양도성 유적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유적의 훼손과 수난의 아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화, 도시화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유적전시관을 한 시민이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다.
유적전시관을 한 시민이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다. ⓒ박찬홍

전시관에 들어서면 총 길이 약 189m의 한양도성 유적을 접할 수 있는데 우리 선조들의 건축, 토목 기술의 우수함과 노고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태조(14세기), 세종(15세기), 숙종 이후(18~19세기)에 쌓았던 부분들이 하나의 성벽을 이루고 있어 시기별 축성양식의 변화와 성벽을 쌓을 때 임시로 나무 기둥을 박았던 구멍의 흔적을 관람할 수 있다.

성벽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성벽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박찬홍

또한 ‘각자성석’과 같은 특별한 기록도 만나 볼 수 있다. 각자성석은 축성과 관련된 글자를 새긴 돌이라는 뜻으로 천자문 순서로 표시된 축성구간 명칭, 축성 담당 지방, 공사 관계자의 이름 등을 새겼다. 즉 ‘공사 실명제’라 볼 수 있는 부분인데, 한양도성은 경기, 충청, 황해도의 양인들이 동원돼 공사 구간을 지역별로 맡았고 돌에는 지역명과 공사 책임자의 이름을 쓰도록 했다. 이렇듯 공사 실명제로 인해 부실공사가 없었기에 임진왜란과 같은 적의 침략이나 자연재해와 수많은 세월을 거쳤음에도 기본이 되는 아랫돌 부분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성곽 복원의 토대가 되었다.

각자성석이라는 특별한 공사실명제의 영향으로 오랜 세월에도 성벽의 튼튼한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각자성석이라는 특별한 공사실명제의 영향으로 오랜 세월에도 성벽의 튼튼한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박찬홍

유적전시관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내자육백척(柰字六百尺)’이란 각자성석을 통해 14세기의 것으로 이 구간의 명칭이 “내(柰)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각자성석은 한양도성 전 구간을 걸쳐 약 300개가 확인이 될 정도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한양도성의 특성과 역사적 연계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기록유산이 아닐 수 없다.

관람데크를 따라 유적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
관람데크를 따라 유적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 ⓒ박찬홍

각자성석 유적지 건너편으로는 방공호 출입문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이 방공호는 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약 33㎡의 방과 긴 통로가 있는데, 안전을 위해 내부 관람은 현재 제한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고 영구 점령하기 위해 한반도 각지에 수많은 군사시설을 건설했다. 1930년에는 ‘방공법(1937.4.1.제정)’에 따라 공습대피시설을 건설할 것을 법제화하고, 도심지, 군사기지 주변에 지금도 그 수를 확인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방공호를 설치했다. 유적전시관의 방공호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일본이 경성(현재의 서울)에 1만 개의 방공호를 만들겠다는 계획 발표 후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방공호는 제국주의시대 일제의 침탈과 강제 노력, 수탈의 생생한 증거물이며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네거티브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공호를 유적전시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아픈 상처와 지난날 독립을 위해 순국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물이다.  

 유적전시관을 관람중인 시민의 모습 뒤편에 방공호가 위치하고 있다.
유적전시관을 관람중인 시민의 모습 뒤편에 방공호가 위치하고 있다. ⓒ박찬홍

방공호를 뒤로 하고 바라보이는 것이 ‘조선신궁 배전 터’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종교 시설로, 일본의 종교인 신도의 사찰이며, 신궁은 그중 가장 높은 지위의 건물이라고 한다. 일제는 1925년 남산에 신궁을 건축해 한국인으로 하여금 강제로 신사참배를 강요해 민족정신 훼손하게 했다. 1930년에는 약 40만 명, 1942년에는 약265만 명이 강제로 참배를 했다고 하니 일제의 만행과 억압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 발굴조사를 통해 그 현장이 발굴됨으로써 일제가 한양도성을 강제 철거하고 그 위에 조선신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조선신궁 배전 터를 관람중이다
시민들이 조선신궁 배전 터를 관람중이다. ⓒ박찬홍

조선신궁 배전 터의 아픈 역사의 흔적을 뒤로 하면 남산의 작은 명물이였던 분수대를 만나 볼 수 있다. 1968년경 조성된 분수대는 둘레가 20m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컸으며, 남산식물원과 함께 남산 나들이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2006년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으로 식물원은 철거되었으나 분수대 광장은 발굴 전까지 유지되어 이번 유적전시관에 하나의 기록물로 함께  되었다.

 유적전시관의 특별한 건축양식이 남산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유적전시관의 특별한 건축양식이 남산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박찬홍

알록달록 물들었던 가을 단풍도 이제 끝자락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남산을 찾아 우리 선조들의 과학적이고 우수한 역사의 현장에서부터 감출 수 없는 아픔의 역사가 담긴 현장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위치 : 서울 중구 회현동1가 100-177 일대(안중근 의사기념관, 남산도서관 인근)
○ 운영시간 : 3~10월 09:00~19:00, 11~2월 09:00~18:00
○ 관람료 : 무료
○ 홈페이지 : http://seoulcitywall.seoul.go.kr/main/index.do
○ 문의 : 02-779-9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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