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감 / Slay

거짓으로 쌓은 권력의 몰락 : 제프리 엡스틴의 범죄와 죽음

작은 사기꾼, 결국 희대의 범죄자가 되다 제프리 엡스틴의 도약은 1970년대 중반 뉴욕의 금융회사 베어스턴스에서 시작된다. 대학을 중퇴했던 그는 인맥을 통해 명문 사립학교 돌턴스쿨의 수학교사로 채용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학부모이자 베어스턴스 의장이었던 에이스 그린버그의 눈에 들어 월스트리트에 입성한다. 
베어스턴스 임원들은 얼마 안 가 엡스틴이 학력과 경력을 위조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연히 해고하려 했지만 그가 ‘영업을 잘 하고 수완이 좋다', '회사에 이익을 준다' 는 이유로 묵인했다. 명백한 거짓말을 알고도 묵인한 조직 내의 도덕불감증이 결국 사기꾼에게 면죄부를 주고 "거짓말은 성공의 도구일 뿐"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심어주는 결과가 됐다. 결국 엡스틴은 베어스턴스의 중역까지 된다. 어느 조직, 어떤 시스템에서나 마찬가지다. 원칙과 정직성보다 '성공한 결과물’만을 추구할 때, 사회는 괴물을 배양하기 시작한다.
9bac18a7cc1447285073d1848799567b69d183d3.jpg제프리 엡스틴의 머그샷. 2019년 8월 맨해튼의 교도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 연합뉴스) 지식인과 유명인을 이용해 권력을 잡다 베어스턴스를 나온 엡스틴은 특유의 화술과 설득력으로 미국 사회의 최고위층으로 인맥을 넓혀갔다. 그는 영국 앤드류 왕자와 같은 왕족, 기업인, 정치인, 유명 연예인들과 어울리면서 특별히 학계에 많은 공을 들였다. 미심쩍은 출처로 벌어들인 돈을 여러 단체에 기부하며 평판을 높였고 자신의 사유지인 '리틀 세인트 제임스' 섬으로 세계적인 석학들과 정치인들을 불러들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만 평생 최소 910만 달러(약 120억 원) 이상을 기부했는데 특히 진화생물학자인 마틴 노왁의 연구소에 전용 사무실을 두고 상주할 정도로 친분이 깊었다. MIT 미디어랩의 전 소장 니컬러스 네그로폰테와 조이 이토 등은 엡스틴이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그의 기부금을 받았고, 이를 '익명'으로 처리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그는 자신의 저택과 섬에서 '과학 컨퍼런스'를 주최했고 학자들을 전용기에 태워 초대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븐 호킹, 제럴드 에델만 등의 학자들이 섬에 초대되었는데 엡스틴은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포트폴리오'로 활용했다. 권력자들과 정부의 기만을 비판해 왔던 노암 촘스키 조차 억만장자 엡스틴이 성범죄로 복역한 것을 알면서도 친분을 유지했고 그와의 관계에 대한 기자 질문에 ‘상관할 바 아니다’ 는 냉소적인 답변을 했다. 지식인의 명분과 비판적 기능이 자본으로 마비된 셈이다. 
과학 컨퍼런스 후에 그의 소유 섬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파티’는 참석자들을 공동 운명체로 묶었다. 엡스틴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엡스틴은 뉴욕, 파리, 개인 섬의 저택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를 통해 유력 인사들의 치부를 수집했다. 누구의, 어떤 모습이 촬영되거나 녹음되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은 침묵의 카르텔로 묶였으며 일부는 엡스틴의 든든한 뒷배가 됐다. 이는 그가 수 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며 미성년자와 여성들을 대상으로 납치와 그루밍, 성폭행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누구도 나를 잡지 못한다. 플로리다 경찰도 내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 자신할 수 있던 배경이었다.

34c60c407d12e705f3c377975441419abc3f03ba.jpg엡스틴 파일 공개에 포함된 앤드류 왕자의 사진. 바닥에 누워있는 여성을 내려다보는 앤드류 왕자. 그는 2022년 엡스틴 연루 건으로 왕실직위를 박탈당했다. (사진: 연합뉴스)석연치 않은 죽음, 남겨진 것은? '미스터리한 자선가', '개츠비 같은 인물'로 회자되며 뉴욕 사교계에서 활동하던 그는 결국 미성년자 인신매매와 성범죄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가 검찰 측과 사법거래를 시도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며칠 후인 2019년 8월,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교도소에서 그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조사 결과, 자살 방지 감시가 필요한 요주의 수감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망 당시 CCTV는 고장 났고 간수들은 잠을 자거나 기록을 조작했던 것이 드러났다. 저명한 법의학자 마이클 바덴은 엡스틴의 설골(hyoid bone) 골절이 자살보다는 타살(교살)에서 흔히 나타나는 양상이라 지적했다. 많은 언론과 피해자 단체가 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엡스틴의 기괴한 연대기는 갑자기 등장했다 몰락한 한 명의 범죄자 이야기로만 볼 수 없다.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한 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학력 위조로 시작된 작은 거짓말이 월스트리트의 중역이라는 권력을 낳고, 그 권력이 다시 거대한 성범죄 카르텔을 만들어 권력자, 유명인들을 등에 업고 수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정직'보다 '실용'을, '원칙'보다 '권력'을 추구해 온 도덕불감증이 누적된 참극이다.
무수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법 체계를 농락하며 "누구도 나를 잡지 못한다"고 자신했던 엡스틴의 오만은 결국 파멸로 끝났다. 그러나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여전히 유사한 풍경이 반복된다. 범죄와 거짓이 용인되고,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 곁에서 논리를 제공하며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모습. 엡스틴의 미국이 아니라 이 곳에서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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