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 Talk

징비록의 저자 유성룡, 이이의 10만 양병론 반대했던 이유

이야기꾼 0 1,091 2018.02.16 15:59

 

"문성공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청했을 때 풍원군 유성룡이 불가하다고 했다. (중략) 작은 나라에서 10만을 양병했다면 재앙이 백성에게 반드시 미쳤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오직 그동안 각박한 정치가 없어서 민심이 이씨에 대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민심이 한번 떠났더라면 양호(정유재란 때 명나라 총사령관)와 이여송(임진왜란 때 명나라 총사령관)의 구원병을 어떻게 먹이고 호남과 영남의 의병들이 어떻게 일어났을 것인가."

서포 김만중의 초상. 노론강경파였지만 사상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이어서 한글을 국자로 써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주자를 비판하기도 했다. 개인소장

 

 

 

 

 

 

 

서애 류성룡이 조선을 구했다.

Comments

아모스 글라스데코 썬데코 별자리 어린이 미술놀이
칠성상회
LF쏘나타 뒷좌석 편안하개 차량용 에어매트
칠성상회
포켓몬스터 문구세트-10EA
칠성상회
바로바로610 국산 핸디형 무선 차량용 진공 청소기
칠성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