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리뷰] ‘무소유’와 ‘무한의 사랑’이 배어든 사찰, ‘길상사’
비 예보가 있는 토요일이었지만,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길상사로 향했다. 다행이 봄비라고 우길 정도의 부드럽고 촉촉한 비가 나뭇잎의 먼지를 씻어 내어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초록’을 만들어 주었다. 비 내리는 산사의 고즈넉함에 대한 기대도 한 몫 하기도 했다.
다행이 대중교통으로도 편하게 갈 수 있는 사찰이라 매력적이기도 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역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성북02(9개 정류장)를 타고 갈 수 있다. 삼선교에서 성북동 주택들을 둘러보며 20-30분 걸어도 힘들지 않게갈 수 있다.
우리는 식당을 먼저 들른 탓에 길상사로 바로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빗길이지만 걸어보기로 했다. 한적한 성북동 주택가 골목길을 구비구비 걸어 길상사로 향했다. 그 길은 좁고 꼬불거렸지만 옛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고, 예쁜 골목에탄성을 자아낼 수도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길을 더듬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는 연등이 나란히 늘어선 길상사 담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석가탄신일을 며칠 뒤로 한 날이라 연등이 다소곳이 반겨주었다.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며, ‘맑고향기롭게’ 근본도량이다.
비록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사찰은 아니지만, 사찰이 담고 있는철학이나 의미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고 농축되어 있는 듯하다.
과거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한 것으로, 전통 사찰과는 극락전의 모습이나, 전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 여사가 1987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 청빈 사상에 감동받아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부동산을 법정스님에게 기증했다고 한다. 대원각을 절로 기부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도 10년간의 요청 끝에 법정스님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1995년에 대법사로 등록하고, 1997년 12월 14일에 길상사로 개명하여 창건되었다.
법정스님이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 여사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렸고, 2010년 77에 입적한 이후 영정은 극락전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길상사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찰의 태생부터 심상치 않은데 그에 더해 사찰 내에는 불교와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의 만남이 빚어낸 섬세하고오묘한 관세음보살상이 많은 사람들을 온화하게 맞이하고 있다.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은 최종태 조각가가 건립한 혜화동 성당의 성모 마리아 석상과 닮아 있다. 그래서 인지 전통 불상의 느낌이라기 보다 마리아 수녀 상의 느낌이 더 강하다.법정 스님이 종교 간의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의뢰하여 봉인하였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사찰 설립 행사에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도 직접 방문해 축사를 했다고 한다.
길상사 일주문을 지나 사찰로 들어가면 일주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경 역시 전통 사찰과는 다른 면모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대원각 시절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길상사에는 대웅전은 없고 대웅전격인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 내부는 ㄱ자 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모양새가 다르다고 정신이나 정성까지 다르지는 않을 터. 많은 이의 염원과 수련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공간이다.
오른쪽 옆으로 길을 틀면 길상7층 보탑이 보인다.
길상7층 보탑은 조선 중기(1600∼1650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며 입을 연 두 마리는 교(敎)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禪)을 상징한다.
원래는 9층석탑으로 경기도 청평 부근에 있던 것을 영안그룹 백성학 회장의 주선으로 이곳에 옮겨왔고, 2개 층을 낮추어 7층으로 2012년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 당시 미얀마의 오래된 탑을 해체하는 도중 부처님 사리가 발견되어 이곳으로 모셔와 봉안되었다 한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길상7층 보탑을 중심으로 탑돌이를 해 본다. 이것 저것 올해도 나의 정성과 부처의 자비를 바라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탑 뒤에는 이런 얼굴도 있더라. 자연과 어루러져 평온한 얼굴...
길상사에서 단청을 입힌 건물은 범종이 있는 범종각뿐이다. 낡은 단청이 이리 반가울 수가...
스님들의 처소도 지나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간다.
드디어 ‘진영각’에 도착한다. 절제된 외형과 정감있는 느낌의 작은 가옥이다.
진영각은 2013년에는 법정스님의 유품과 저서를 전시하는 공간으로개원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소박하고검소하게 지내셨던 법정스님의 옷 한벌, 만년필, 시계, 다기, 유언장, 저서등을 관람할 수 있다.
법정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56년 효봉스님의 제자로 출가했고, 2010년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무소유>, <오두막 편지> 등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효봉스님으로부터 무소유를 배웠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입적하면서 “내 이름의 채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간 받은 인세는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무소유로 점철된 삶을 살다간 분이다.
법정스님이 생전에 즐겨 앉아 계셨다는 작은 나무 의자도 놓여있고, 마당 한 켠에는 생전의 소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듯 작고 정갈한 푯말 아래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길상사는 승보사찰인 전남 순천 송광사의 말사이다. 이는 법정스님이 송광사 소속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에도 진영각에 있는 의자와 똑 같은 것이 놓여 있다고 한다.
진영각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면서도 방문객들에게아낌없이 쉴 자리까지 내어주는 모양새다.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경치도 바라볼 수있는 힐링 공간이다.
빗소리를 듣고 비 내음을 맡으며 친구들과 한참을 속닥거리다 겨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여기는 함께 와도 좋고, 혼자 와도 좋을 것 같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올라가는 길과 반대편으로 산책길을 잡으면, 지장전, 설법전, 침묵의 집 등과 함께 공덕주 김영한 여사를 기리기 위한길상화보살 공덕비를 만나게 된다.
이쯤에서 공덕주 길상화 보살이 궁금해진다. 사실 김영한은 백석의 연인으로도알려져 있다.
김영한은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16세의 나이로 뜻한 바 있어 금하 하규일 문하에서 ‘진향’이란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했다.
1936년 천재시인 백석을 만나 불꽃처럼 사랑했지만, 기생이라는 신분이 걸림돌이 되고 만다.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명으로 불렸던 그녀는 1953년백석을 이해하기 위해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필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이어갔다. 평생 백석을그리워하며 보낸 김영한은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이라는 에세이외에 <하규일 선생 약전>을 저서로 남겼다.
그녀가 떠나기 전 1,0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했는데 아깝지 않냐? 라는 기자의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법정스님과 김영한, 백석 시인으로 이어지는 사랑과 존경의 이야기가무소유의 정신 위에서 빛나고 있는 길상사. 그래서 뷸자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이끌고 있다. 나 또한 여름은 물론 가을, 겨울의 길상사를 보게 될 것 같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길상사라고 하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TMI… 길상사의 정랑은 좀 특별하다. 밖에서 신을 벗고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낯선 구조였지만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가정집 화장실 같은 느낌이랄까… 정성스럽게 관리되는 정랑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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