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여행리뷰] 수로와 골목을 따라 쌓인 시간의 흔적, ‘물의 도시’ 항저우를 가다 ⑤ 항저우 역사 투어

[리뷰타임스=라라 리뷰어]


항저우에 첫 발을 들인 지 3일째 되는 날에야 항저우 시내 투어에 나섰다. 

 

항저우 시내에서의 호텔은 서호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도우(大兜)문화역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천도호를 떠나 항저우 시내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8시 경인데다 피곤하기도 해 이튿날 아침 다도우문화역사거리를 산책한 후 오후 느지막이 서호(西湖)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서호를 탐험하기 전, 서호 주변을 돌며 항저우의 옛 역사와 마주했다.

 

서호 최고의 전망대 보석산에서 바라본 서호

 

보석산 ‘하마펑’, 서호 최고의 전망대

서호를 제대로 돌아본 건 여행의 마지막 날 오전부터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나와 서호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서호 북쪽의 보석산으로 향했다. 마지막날 묵었던 숙소(게스트하우스)에서 보석산 진입로까지는 약 1km 정도의 거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지도로 확인했을 때는 북송 때 세워졌다는 바오추탑(保俶塔)을 들른 후 보석산 정상으로 가면 되는 거였는데, 걷다 보니 보석산의 정상인 하마봉(蛤蟆峰)에 먼저 도착했다. 해발 200m밖에 되지 않아 계단 몇 개를 오르니 이내 정상이다. 하지만 계단 입구에서 잠시 멈칫거려야 했다. 오전 7시가 넘었으니 많이 이른 시각은 아닌데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야생동물이 출현할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빠른 걸음으로 무작정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5분도 안됐는데 금세 정상이다. 다행히 청소하는 분도 계신다. 

 

보석산 ‘하마펑’, 서호 최고의 전망대


정상 바위에 올라서니 서호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었다면 더 예뻤겠지만, 흐린 날은 또 흐린 날대로 운치가 있다. 왼편으로 보이는 우뚝 솟은 탑이 바오추탑(保俶塔)이다. 가까워 보여 일하는 분께 여기서 바오추탑까지 갈 수 있냐 물으니 맑은 날이면 바위를 타고 넘어갈 수 있지만, 비가 오니 미끄러워서 위험하단다. 다른 길로 갈 수 있으니 그리고 가라고 알려준다.

 

왼편으로 보이는 우뚝 솟은 탑이 바오추탑(保俶塔)이다.

 

서호 최고의 전망대 보석산에서 바라본 서호

 

정상에서 잠시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올라올 땐 보지 못했던 바위 틈 사이를 지나 내려오니 한쪽은 바오추탑, 다른 한쪽은 도교사원으로 향한다. 바오추탑은 시간을 봐서 들르기로 하고 도교사원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 중 도교사원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바오푸도원, 진나라 때 건립된 도교사원

도교사원의 명칭은 바오푸도원(抱朴道院)으로, 진나라 때 처음 세워질 때는 갈선암(葛仙庵)이라 불렸다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동진의 유명한 도사인 갈홍(葛洪)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는데, 도를 닦는 동안 약초를 채취해 주민들의 병을 치료하고, 우물에는 단약을 넣어 감염을 피하게 했으며, 이웃들간 왕래가 쉽도록 산길을 열어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갈홍이 살던 고개를 갈령(葛岭)이라 부르고, ‘갈선사(葛仙庵)’를 지어 그를 모시기 시작했다 한다. 이후 원나라 때 병화로 파괴되었으나 명나라 때 재건해 '마노산거(玛瑙山居)'로 개칭했다가 청나라 때 다시 수리한 후 갈홍도의 호인 '바오푸쯔(抱朴子)'를 따 지금의 명칭인 '바오푸도원'이 되었다 한다.

 

도교사원은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지만, 산속의 사찰과 비슷한 분위기다. 다행히 개방 시간이 8시부터. 입장료는 5위안이다. 바오푸도원(抱朴道院)도 201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항저우의 시후호 문화경관’ 중 일부에 해당한다.

 

바오푸도원, 진나라 때 건립된 도교사원


바오푸도원, 진나라 때 건립된 도교사원

 

사원을 찬찬히 돌아보니 서호의 전경을 한눈에 품고 차를 한 잔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진나라 때 건립된 도교사원인

 

아침 공기가 좋아 이 도교사원에서 1시간 가까이 머물렀다. 100% 충전된 아이폰을 갖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동영상을 몇 컷 찍어서인지 배터리가 50% 정도밖에 남지 않아 잠시 전기를 사용한 시간도 포함된다.

 

도교사원을 나와 다른 사람들이 발길을 하는 곳으로 나도 함께 따라간다. 추양타이(初阳台)라는 정자에는 가볍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서호 일출 명소란다. 정자 주변으로 흰 꽃이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검색해보니 중국 원산의 덩굴 장미인 ‘로사시모사’라 한다. 열매가 송글송글 맺힌 이것은 동청(자주호랑가시)이라고.

 

정자를 지나 다시 바오추탑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바오추탑, 북송 때 세워진 불교문화의 상징

바오추탑은 ‘항저우의 시후호 문화경관’ 중 불교문화 대표 유적으로, 10~13세기 항저우 불교문화의 부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북송 태평흥국원년(976년)에 세워진 것으로, 천탑(天塔), 보석탑(宝石塔)이라고도 부른다고. 원래는 벽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누각 스타일의 9층 탑이었는데, 송나라(960~1279)와 원나라(1260~1368)를 거치며 몇 차례 파괴되고 다시 세워졌다 한다. 지금의 탑은 1933년(중화인민공화국 22년)에 재건된 것으로, 8각형에 높이 45.3m의 7층 탑이다.

 

내가 바오추탑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다른 여행객 한 무리가 다가왔다. 마이크를 든 사람의 해설을 들어보니 현지 1일 투어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따라가면 또 어디를 갈까 궁금해 조용히 따라가 봤다.  

 

북송 때 세워진 불교문화의 상징인 바오추탑과 추양타이

 

산 속에 자리한 예쁜 건물, 춘전넨따이BookBar(纯真年代书吧)라는 곳으로 책도 읽고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투어팀 일행이 BookBar를 지나 조금 더 걷더니 돌문 앞에서 멈춰섰다. 너무 가까이 가면 눈치가 보이니 살짝 떨어진 위치에서 귀를 쫑긋 기울여 봤다.


산 속에 자리한 Bookbar, 춘전넨따이BookBar(纯真年代书吧)

 

보석산조상, 원ᐧ명 시대의 마애석각

‘보석산 조상(宝石山造像)’인데, 길이 50미터가 넘는 마애석각이 남아 있다. 이곳의 조각상들은 원나라와 명나라 두 시기에 걸쳐 세워졌는데, 원래 28개의 조각상이 있었는데 1960년대에 파괴되고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다 한다.

 

이어서 이동한 곳은 대불사 유적이다. 대불사는 오대 후주 현덕 2년(955년)에 세워진 사찰인데, 당시에는 대불이 없었기에 ‘도솔사’라 불렀다 한다. 대불이 만들어진 건 북송 말기로, 불상을 만들었다기보다는 불상처럼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어 내용을 알고 방문하지 않으면 대불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이 바위는 기원전 220년에는 진시황이 남쪽 지방을 순유할 때 배를 댔던 곳이라 한다. 당시 항저우는 광활한 바다였고, 진시황이 보석산 앞에 도착했을 때는 풍랑을 만나 배를 돌리기 어려워 배의 밧줄을 대불인 거대한 바위에 묶어 안전하게 배를 정박시킬 수 있었다고 전해진단다.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지는 바람에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다.

 

보석산조상, 원ᐧ명 시대의 마애석각

 

보석산조상, 원ᐧ명 시대의 마애석각

 

투어팀도 잠시만 멈췄다가 곧바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니 곧바로 서호인데, 투어팀은 서호가 아니라 왼편 골목길로 들어섰다. 


스한루, 1972년 역사적인 중ᐧ미 공동성명(상하이 코뮈니케) 합의 장소

골목길의 벽면은 오토바이들이 주차돼 있는데 그곳에 뭔가 글씨가 적혀 있다.

벽면이 자리한 이 골목길의 이름은 스한루(石函路, 석함로)다. 현재 서호 주변의 주 도로는 베이샨제(北山街)인데, 베이샨제가 건설된 건 불과 100년 전의 일이란다. 지금은 뒷골목으로 밀려난 이 스한루가 새 도로가 나기 전까지 항저우의 첸탕먼(钱塘门)과 서호를 잇는 주요 도로였다 한다. 약 40m에 달하는 골목길의 왼쪽 벽면에 마애 문자 석각이 새겨져 있는 게 이 때문이란다. 이곳의 흔적은 서호 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도 드문 것으로, 유교와 불교, 도교가 한데 어우러져 있고, 근현대 중국과 서방 간 교류의 흔적까지 남아 있다 한다. 암벽에 새겨진 글씨 중 ‘南無大日如來’는 1928년 신해혁명 원로인 황원수(黄元秀)가 쓴 것이고, “東南一柱”、“節用愛人,視民如傷”은 명나라 때 반란을 평정한 장가윤이란 인물에게 항저우 사람들이 고마움의 표현으로 새긴 것이라 한다. 이 글자들이 간체자가 아니라 번체자로 쓰여진 이유다. 중국의 간체자는 1956년부터 도입된 것이다.

 

1972년 역사적인 중ᐧ미 공동성명(상하이 코뮈니케) 합의 장소

 

1972년 역사적인 중ᐧ미 공동성명(상하이 코뮈니케) 합의 장소

 

스한루는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작은 뒷골목이다. 하지만 이곳은 1972년 2월 28일 중미 양국이 냉전에 따른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1979년 수교를 맺기까지의 기반이 된 중미 공동성명이 최종 합의된 장소라 한다. 당시 성명이 상하이에서 발표됐기에 ‘상하이 코뮈니케(Shanghai Communiqué)’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양국이 서명을 한 곳이 바로 이곳 스한루라는 것. 닉슨은 10년 후인 1982년 9월에도 한 차례 더 항저우를 방문했었다. 


골목길인 스한루를 따라 끝까지 가면 흰 색 건물이 하나 나온다. ‘항저우 주재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란다. 1895년 청ᐧ일간 불평등 조약인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후 항저우항이 외국에 개방됐는데, 이듬해인 1896년 일본 정부가 2개의 건물로 구성된 영사관을 이곳에 세웠다 한다. 현재 이 건물은 저장성 무형문화유산보호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청ᐧ일간 불평등 조약인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후 ‘항저우 주재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됐던 건물

 

투어팀을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돼간다.

투어팀의 오전 투어도 모두 종료된 모양이다.

 

10여명이 넘는 인원이 역사 투어에 참여하고 있는 걸 보니 중국인들도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진나라부터 송, 원, 명,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서호 주변의 오랜 역사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쯤에서 투어팀과는 혼자만의 작별을 고하고, 항저우의 필수 코스인 서호로 향했다.


<저작권자 ⓒ리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Comments
영문 곡선 스포츠 보스턴백 URK-192
연카키 빅사이즈 G컵 브래지어 C컵 감동 G
인모 웨이브 정수리 부분가발 볼륨 내추럴 탑커버
잔솔 긴앞머리 부분 가발 사이드뱅 똑딱이 여자 여신
소니)노이즈캔슬링 헤드폰(WH-CH720N /블랙)
마미봇 공기청정기 미니 가정용 공기정화 USB 필터
케이블 오거나이저 10pcs White 케이블 정리 전선정
HDMI 디지털 액자 17형 전자 앨범 동영상 서브모니터
벨로 실버헤어라인 전기 전등 1로 2구 스위치
디귿철제 슬라이드 슬라이딩 수납함 소형
후라이팬 정리대 그릇선반 접시거치대 홀더 수납장 신발장 수납선반
이케아 SKOSTALL 스코스탈 신발정리대
이중장금장치 도어스토퍼 휴대용도어락
탄성소재 헤드 진동 흡입 귀클리너 귀
가벼운 파스텔 물병주머니
사옹원 고구마튀김 1kg

프라모델 피규어 비행기 장난감 완구
칠성상회
(이거찜) 스위트 퍼피 필통 강아지 자수 대용량 학생/연필통/연필파우치/안경집/다용도파우
칠성상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