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칼럼] 계기가 작가를 만든다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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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요즘은 꽤 복잡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예전에는 이 질문의 답이 꽤 단순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가로 등단한 사람이 소설가였던 시절 말이다.
SF 작가로 데뷔하기 전, 나는 대학 학보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당선된 적이 있었다. 대학원 시절의 일이었다. 그 일을 신기하게 여긴 교수님 한 분이 처음으로 나를 “배 작가”라고 부르시곤 했는데, 그 호칭을 들은 다른 과의 한 학생이 수업 중에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등단하셨어요?” 등단은 아니고 작은 공모전에서 상을 탄 것이라고 대답했을 때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나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아, 난 또’ 하는 표정.
나중에 돌이켜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한 맺힌 기억까지는 아니다. 그 시절에는 정말로 그 한마디면 작가인지 아닌지를 가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예를 든 것뿐이다. 다행히 요즘은 작가의 자격을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물을 수는 없게 되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데에는 나 같은 사람의 존재도 한몫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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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뒤로도 나는 등단한 적이 없다. SF 공모전을 통해 데뷔했고, 그 후 몇 년간은 일단 데뷔를 하기는 했는데 내가 작가인 게 맞나 혼란스러워하면서 다른 공모전에 글을 내기도 했다. 그다음은 의외로 소설가가 거치게 되는 전형적인 코스를 밟았는데, 잡지나 앤솔러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다가 이름이 알려진 뒤에는 단행본을 내는 평범한 과정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내 경우는 시스템이 전혀 없는 곳에서 작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말은 작품을 발표하고 독자층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 어떤 잡지사, 어떤 출판사와 함께 일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 데뷔해서 첫 책을 내기까지 내가 거쳐 간 어느 출판사의 어느 기획도 대부분 2년을 못 채운 한시적인 프로젝트였다. 생겨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기획이니 기다리면 또 다른 지면이 생기기야 하겠지만, 작가로서 경력을 이어가기에 유리한 환경은 아니다.
그래서 이 시절에는, 나처럼 SF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상당히 곤란했다.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방법이 없지도 않았다. 다만, 미리 계획할 방법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마치 그 지면들을 꿰어서 작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이는 전혀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
비결이 있다면 새 지면이 생기자마자 첫 번째 주자가 되어 글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작가들은 보통 첫 번째 순서가 되기를 꺼린다. 지면에 맞춰 글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면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세계에서는 2호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자세로 달려들 필요가 있다. 1호마저 무산되는 일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창간호는 생존율이 높다. 아무튼 핵심은, 그런 불안정한 지면들을 조합해서 작가에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경력으로 만들어낸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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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행본인 『타워』 가 출간되고 이제는 정말로 프로 작가가 되자, 내가 그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단한 적은 없지만, 이 무렵부터는 나도 사실상 등단한 것이나 다름없이 다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어째서인지 새로 생긴 지면과 새 독자를 대하는 일이 전혀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아서였다.
‘사실상 등단으로 간주’한 상태에서 지면 청탁이 들어온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어디 얼마나 대단한 글을 써내나 한번 보자’로 해석되는 말이기도 하다. 새 지면, 새 무대란 그런 것이다. 청탁한 사람은 그런 의도가 없었을지 몰라도 작가는 그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꽤나 두려운 일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바보 같은 불안이 함께한다면 더 그렇다.
그런데 그 무렵의 나는 내가 드디어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데뷔 후 몇 년 동안 이어진 당혹스러운 기간과 달리, ‘사실상 등단’ 자격을 갓 얻은 2009년 무렵의 나는 누가 등단으로 쳐주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 확고하게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시스템이 필요 없었다. 물론 글을 발표하려면 매번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어떤 제도가 나에게 한시적으로 열어준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는 일 따위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다. 그 기회가 물거품이 되고 내 경력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두렵지도 않았다. 원점에서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누가 어떻게 방해하든 내가 그때까지 쌓아놓은 것들이 쉽게 무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말로 정리할 수는 없어도 실행에 옮기는 데는 문제가 없는 상태. ‘사실상 등단으로 간주’되는 상태였던 나는 ‘작가가 되는 일’의 주요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 이쯤에서 이 글의 맨 처음에 나오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작가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답이었던 등단이라는 말을 해체한 다음, 거기에 들어간 주요 재료들을 다시 조합해 같은 질문에 다시 대답해야 한다.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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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다음 글을 쓸 계기가 충분히 모여 있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계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꿈과 열정이 가장 좋은 계기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른이 된 작가에게 제일 훌륭한 그것은 역시 부와 명예다. 현실적으로는 약간의 돈과 사람들의 인정 정도면 이 일을 이어갈 좋은 계기가 된다. 이 두 가지는 일반적으로 지면 근처에 응축되어 있다. 등단의 이점은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수준의 돈을 벌면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 꼭 등단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지만, 등단은 지금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의 하나다.
좋은 상을 받는 것이 작가가 되는 지름길이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좋은 편집자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편집자는 그야말로 계기 덩어리다. 기능적으로는 작가의 파트너가 될 사람이고, 이러이러한 글을 써보라고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할 사람이며, 업계에서 청탁서와 계약서를 내미는 역할을 담당하는 바로 그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연락이 닿는 사람은 아니다.
부와 명예만큼 강력한 계기는 아니지만, 글쓰기에 대한 애정, 혹은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는 심리 상태 같은 내면의 동기도 대단히 중요하다. 작가는 돈을 주면 의뢰인이 원하는 글을 찍어내는 직업은 아니다. 어떤 글을 쓸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방식으로 대답할지 스스로 알아서 정해야 하는 직업이므로 내적인 동기 없이 지면을 채워나가기는 어렵다. 심사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글쓰기의 반은 답안을 얼마나 잘 써내느냐이지만 나머지 반은 어떤 질문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질문이 없는 글은 재미가 없다. 자기 질문이 아닌 질문에 답하고 있는 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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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요했던 계기는 동료 작가다. 한국 SF는 비평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다.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 상당 부분이 SF란 무엇인가, SF와 판타지는 어떻게 다른가, SF와 과학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가와 같은 추상적인 질문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은 그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진도가 조금씩 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SF 작가가 참고할 만한 현장 비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 SF 작가는 창작에 필요한 안목을 어떻게 다듬고 향상시킬 수 있었을까? 비결은 동료 작가를 통해서다. SF 작가들은 공통의 가치를 공유한다. 아직 글로 정착된 적이 없고 체계적인 조사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 동료 작가들은 “한국 SF”라는 장(場, field)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대강 어떤 것들인지 감각으로 알고 있다. 이 장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SF 작가들 사이에 다른 장에 속해 있는 작가 한 사람을 끼워 넣고 소설집을 기획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도 조율하지 않아도 마치 조율된 듯 일관성 있는 결과물들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딱 한 사람만이 다소 이질적인 작품을 써내게 될 것이다. 소설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결과는 다른 문학장에 SF 작가 한 사람이 끼어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직접 겪어봐서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글을 써내는 동료 작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은 다음 글을 쓰는 좋은 계기가 된다. 옛날 작가나 외국 작가의 존재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러하다. 동시대 작가란, 단순히 나와 동일한 장의 영향을 받는 사람에서 그치는 존재가 아니다. 그 장은 도대체 누가 발생시킨 걸까, 어차피 비평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데? 바로 그들 하나하나가 발생시켜놓았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장 안에서 작가는 서로가 서로의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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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룰 중요한 계기는 독자다. 글쓰기는 실연(實演)이 없는 예술이지만, 작가도 예술가인 이상 독자와의 교감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고, 책이 읽히고, 어떤 방식으로든 작가에게 반응이 돌아오는 과정이 완성되어야 한 주기가 마무리된다. 소설은 여기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예술이지만, 이 과정이 필요 없는 예술 장르는 아니다. 또한 이는 지면이 수행하는 본질적인 기능 중 하나이기도 하다. 등단한 작가가 무대 위에 올라 독자를 만나게 하는 일.
하지만 무대에 오르지 못한 작가는 어떻게 작품 발표의 한 주기를 거칠 수 있을까? 등단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특정한 무대만을 무대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지금 문학계에서 작가의 자격을 묻는 말이 “등단하셨어요?”가 아니게 된 것은, 업계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등단의 무대 기능을 해체한 후 재조합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다시 말해 문단이 인정하는 특정 지면이 아닌 곳에도 무대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작가에게는 작은 무대라도 독자와 교감하고 ‘한 주기’를 완성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정당한 보수와 연결된 지면이 제일 좋겠지만, 우리는 지금 등단의 효과를 해체한 후 재조립하는 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런 환경에서 작가의 자격을 완성해가려면, 가수가 작은 무대에 오르듯 작은 지면을 찾아 나서기도 해야 한다. 헐값에 저작권을 가져가는 곳보다는 아예 돈이 오가지 않는 곳이 나을지도 모른다. SF 작가로 데뷔한 후 작가가 맞는지 혼란스러워했던 몇 년 동안 내가 한 일 또한 바로 그 일이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작가는 자신만의 독자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에게는 내가 ‘암흑물질 독자’라고 이름 붙인 독자층이 있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물리 세계와 반응을 하지 않아 어둡게 보이는 물질을 말한다. 그러니까 독자가 암흑물질이라는 것은 좀처럼 검출되지 않는 독자라는 의미다. 있지도 않은 독자를 지어낸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검출되지 않는 암흑물질이 어마어마한 질량을 통해 은하의 모양이나 우주의 운명 같은 것을 결정해버리듯, 조용히 책만 사 읽는 암흑물질 독자도 가끔 질량을 드러낼 때가 있다. 직접 보기는 어렵고 가끔 숫자로 정리된 것을 누군가 전해줄 때나 알게 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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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나는 그때까지 쌓아둔 것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타워』 가 나온 직후의 나에게는 쉽게 경력을 쌓아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 『타워』 같은 글을 계속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펼쳐진 것은 기나긴 모험이었다. 독자에게도 모험이었을 것이다. 검출되지 않으니 독자가 사라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때쯤, 누군가 암흑물질 독자들의 질량이 드러난 자료를 보여준 적이 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 모험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실 내 독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나 내가 쓰는 글들이 실제보다 조금 더 밝게 보인다면, 그것은 잠자코 모여 있는 암흑물질 독자들이 내 앞 어딘가에서 거대한 중력렌즈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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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로따로 해체된 후 다시 조립된 계기들이 잔뜩 모여, 등단이라는 제도가 인정하는 작가의 자격과 비슷한 정도가 되었다는 점을 스스로 체감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혼란스럽지도 않고 작가라는 이름이 부담스럽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2009년에 누가 나에게 “등단하셨어요?” 하고 물었다면, 그리고 ‘아 난 또’ 하는 표정을 보였다면, 내 쪽에서 오히려 코웃음을 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렵의 나에게는 그런 원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누가 뭐라든 나는 이미 작가였고, 다음 글을 쓸 계기가 충분히 모여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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