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서점의 구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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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복판이다. 환한 볕이 진한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바람이 불었는지 우르르 잎 많은 나무가 흔들린다. 아무나 붙들고 잘 지내고 있나요, 하고 묻고 싶어진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잘 지내느냐고 물어보면 무어라 대답해야 하나 생각해본다. 뜬금없이 구름을 떠올린다. 그렇지. 지금은 구름의 계절. 달아오른 대지를 떠난 물방울들이 공중에 머무르는 기간. 곧 바람이 차가워지고 낙엽이 떨어질 때쯤이 될 것이다. 하늘은 높아지고 나는 서운히, 여름 형형색색의 구름들과 작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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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혜화로 서점을 옮긴 뒤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구름이다. 신촌 시절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들은 너무 커서 때로 서점보다도 커 보였다. 손님이 없고 읽고 쓰기에 지치고 궁리마저 지겨워지면 나는 의자에 기대어 창문 너머에 시선을 두곤 했었다. 거기엔 구름이 있었다. 어떤 상태도 아닌 채로 구름에 동화되어 깜빡 졸기도 했었다. 혜화로 옮긴 나의 서점에는 창문이 없다. 아니, 창문은 있는데 구름이 머물러주는 창문은 없다. 대신 서점 이곳저곳에 구름 모양의 장식들이 걸려 있다. 구름에 대한 나의 소란한 애정을 아는 지인들이 하나둘 선물해준 것들이다. 이제 나는 그 구름의 형상들에서 구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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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열기 전에는 출판사에서 일했다. 좋은 사람들과 일을 했지만 정확한 시스템 속에서 나는 잘못 자라난 토끼풀이었다. 틈 날 때마다 건물 옥상에 올랐다. 옥상에는 구름이 많았다. 구름은 원하지 않아도 거기에 있었다. 원할 때는 한껏 아름다웠다. 단 한 번 같은 적 없이 유유하게 그것은 머물렀다 흐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구름에 대한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책 속의 사진들과 옥상의 구름들은 닮았고 달랐다. 잘 알고 싶었지만 갈수록 알 수 없었다. 몰라 좋은 것도 있지. 배운 대로 아는 만큼 하나하나 이름을 챙겨주고 때로는 지어주었다. 사실 구름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둔 것도, 서점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어쩌다 시집서점을 열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대답한 적은 없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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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점은 작은 구름을 닮았다. 유심히 여기지 않아도 거기 있다. 오래 몰래 있다가 문득 눈에 띄었을 때, 아 여기 서점이 있었네.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그러니까 구름 속에 있고 싶은 사람은 서점으로 들어오면 된다. 그런 당신과 함께 서점은 조금씩 흘러간다. 이윽고 당신이 다시 서점 문을 열고 나설 때에는 몇 센티, 때로는 몇 미터쯤 움직여 당신을 이전과 다른 곳에 내려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손에 들려 있지도 모르는 책 한 권은 구름의 조각이겠다. 어디서든 그것을 펼쳤을 때 당신은 누군가의 생각이 띄워 올린 구름의 내력을 읽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비였고 한때는 바다의 일부였으며 목을 축여주는 시원한 물 한 잔이었기도 할 아득한 시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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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파뉴의 과학 철학자 바슐라르에 따르면 구름은 가장 몽상적인 시적 오브제object이다. 그것은 느릿느릿하게 상상하며 그 상상을 반죽하는 이를 위한 질료라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구름은 “‘그것’이 되라!” 하고 명령하면 ‘그것’이 된다. ‘그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그 모호함은 시적이다. 시를 읽는 것은 구름을 보는 일과 같다. 시를 읽을 때, 사람들의 눈에 떠오른 구름은 그의 마음에 따라 ‘그것’이 된다. 나는 ‘그것’이 마냥 허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고 싶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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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위트 앤 시니컬의 3주년 기념 굿즈의 테마는 ‘구름’으로 정했다. 기상예보관 Y와 디자이너 A의 도움을 받아서 엽서와 포스터를 만들었다. 최초의 구름 전문가 루크 하워드의 10종 운형표를 도형화해 만든 그야말로 아름답고 쓸모없는** 물건이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생각처럼 팔리지도 않는다. 잔뜩 쌓여 있는 포스터와 엽서를 보면서, 그래도 나는 좋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만 같다. 어쩌면 해야 할 말을 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포스터를 창문 한쪽에 붙이면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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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어려웠던 그 시절 옥상에서의 구름이 여기 있구나. 정작 그 구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듣기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나 멀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나는 그저 내가 바라보는 것처럼 되고 싶었다. 지금 이곳, 시집서점에서 찾아오는 독자들에게 시집을 안내하고 건네는 내가 그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다. 꼭 닮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곳이 누군가에게 구름이기를, 이곳에 찾아왔을 때 구름 속 걷는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근사할 테니.


*G. 바슐라르, 『공기와 꿈』(정영란 옮김, 이학사 2001).
** 김민정,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 2016)의 제목을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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