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영원한 수수께끼와 작은 용기

65734.jpg


얼마 전 오랜만에 신작 장편 소설을 출간한 김영하 작가님의 『작별인사』 북 토크를 유튜브 〈편집자K〉 채널에서 진행했다. 작가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편집했고, 『작별인사』의 초고를 살핀 인연이 있어 나에게도 오래 기억될 행사였다. 북 토크는 대개 작가의 근황과 책 내용으로 채워지게 마련인데,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이 꾸린 행사였던 터라 작가 - 편집자의 협업 과정에 대해서도 제법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65737.jpg


그러던 중 김영하 작가님이 문득 생각났다며 『오직 두 사람』 편집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본인이 어떤 부분을 수정하려고 했는데, 담당 편집자였던 내가 그 수정에 반대하며 “작가님, 이건 저를 믿으세요.”라고 했고, 결국 그 말에 따라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나도 그때가 기억나 구체적인 상황을 부연할 수 있었다. 편집 과정이 거의 다 진행되었을 때였다. 표지 작업을 마무리하며 뒤표지에 짤막한 카피 하나와 ’작가의 말’ 발췌문을 넣어 작가님께 보여드렸다. 작가님이 수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했던 것은 그 ‘작가의 말’ 부분이었다. 대개 한국 소설의 뒤표지에는 헤드 카피와 서브 카피 그리고 추천사나 해설의 일부, 혹은 작품의 일부를 발췌해 싣는 터라 ‘작가의 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괜찮을까 싶었던 것이다. 

뒤표지에 들어갈 내용을 두고 편집자가 작가를 설득한 것이 작가에게 그렇게 인상적인 일인가 싶을 수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뒤표지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하며 의아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뒤표지에 적힌 것은 그게 뭐든 작품에 비하면 부수적이다. 책의 핵심은 작품에 있으니까. 그러나 독자가 한 권의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텍스트는 공교롭게도 작품이 아니라 표지에 적힌 것이다. ‘이 책 재밌어 보이는데?’, ‘이 책 나에게 필요한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많은 경우 표지와 날개, 띠지에 적힌 여러 문구이다. 독자는 그 책이 어떤 작품인지 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모르는 채 구매한다.

표지에 적힌 다양한 글귀들은 편집자가 선택한다. 네모반듯 한정된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는 전적으로 편집자에게 달렸다. 작품의 여러 특징 가운데 어떤 면을 부각할 것인가,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더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선택하게 하려면…, 그러면서 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려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들의 결과물이다.

『오직 두 사람』 뒤표지에 ‘작가의 말’을 실은 건 당시 나에게도 새로운 시도였다. 앞서 말했듯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7년 만에 선보이는 이 작품집은 김영하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서 큰 전환점이라 생각했고, 작가의 육성만큼 지난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잘 보여주는 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작가가 “이게 괜찮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흔들리지 않는 건 다른 문제다. 여기에 정답은 없으니까.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때 최상의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으니까. 뒤표지에 ‘작가의 말’ 대신 표제작의 좋은 구절을 발췌해 싣는 것이 더 많은 독자의 호감을 살 수도 있다. 강렬한 카피를 넣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기회는 한 번뿐이며 다른 가능성은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묻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괜찮겠느냐고 물었을 때 “작가님, 이건 저를 믿으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신중히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작가님도 납득한 것이리라.

어쩌면 작가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안전할지도 모른다. 설득할 것도 책임질 것도 없으니까. 연차가 적고 경험이 많지 않았을 때는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님께 나를 믿어달라고 처음으로 용기 내어 말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뒤, 뭔가 확실히 달라졌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새로이 자각할 수 있었다. 나에게 충분한 명분과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출간일이 임박해 혼란스러워하는 작가에게도, 책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마무리 작업에도 이롭다, 그게 내가 편집자로서 가져야 하는 태도이자 전문성이다.

이후 나는 조금 더 과감한 시도도 할 수 있었다. 배수아 작가님의 『뱀과 물』과 이승우 작가님의 『사랑이 한 일』을 작업할 때는 뒤표지에 카피도 빼고 작품의 일부 내용만을 발췌해 실었다. 허허로운 표지가 낯설긴 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언젠가 이마저도 빼고 아무 내용 없는 표지를 선택하는 날도 올까? 그럴 때 나는 나 스스로와 작가를 어떻게 설득할까? 설명보다는 침묵이 더 어울리는 책이 있다고. 세상에는 설명되지 않는, 아니 침묵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은 아름다움이 많지 않으냐고. 아마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



작별인사
작별인사
김영하 저
복복서가
오직 두 사람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저
문학동네
뱀과 물
뱀과 물
배수아 저
문학동네
사랑이 한 일
사랑이 한 일
이승우 저
문학동네



추천기사

[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카버의 마지막 마음 | YES24 채널예스
[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카버의 마지막 마음 | YES24 채널예스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는 데 긴 이야기가 필요한 건 아니구나.’ 새삼 생각하며, 그가 마지막으로 쓴 시― 공교롭게도 제목이 「말엽의 단편(斷片)」이다 ― 를 일부러 더 천천히 읽었다. (2022.05.03)
[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자가 격리 중에 읽은 책  | YES24 채널예스
[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자가 격리 중에 읽은 책 | YES24 채널예스
지난 일주일은 내게 어떻게 기억될까. 접촉하는 것과 격리되는 것,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란 것, 나는 타인과 강력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 그리고 침묵의 시간들. 소리 내어 웃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나는 몰랐다. (2022.04.05)
[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어느 날 서점의 문이 열리고 | YES24 채널예스
[편집자K의 반쯤 빈 서재] 어느 날 서점의 문이 열리고 | YES24 채널예스
그렇게 당신은 집 근처 동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첫 순간, 첫 장면에 집중하자. 책의 양감, 서가의 빽빽함, 눈으로도 느낄 수 있는 표지의 질감들, 서점 특유의 냄새와 공기. 수많은 책이 한 프레임에 담겨 순식간에 시야에 들어오고, 낱낱의..



65736.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0 Comments
데일리 짝꿍닷컴 NK922 nk 남성구두 신사
일리윤 히알루론 모이스춰 수분크림 100ml
패션 웰론점퍼 재킷 웰론 데일리점퍼 푸퍼 숏
남자 스포츠 케쥬얼양말(베이직) 1켤레
파워스테이션5 PS5-700EV 80PLUS Standard (ATX/700W)
아이폰 맥새이프 코튼 컬러 소프트 범퍼케이스 iPhone16 15 14 플러스 13 프로 12 미니 11 XS 맥스 XR
맥스틸 헤드셋 7.1 C타입 유선 서라운드 게이밍헤드셋 HC10 (USB변환 젠더 포함)
이동형 빔프로젝터 스크린(221x125cm) 영화빔스크린
사이드테이블 화이트/티테이블 베드트레이 협탁
서랍 레일 가구 부속 싱크대 2단 볼 레일 400mm 2P
창문 샤시 잠금장치 대 창문고정장치 창문보안잠금장치 베란다고정장치
암막커튼 210 중문가림막 천 창문가리개 주방패브릭 바란스 공간분리 현관가림막현관문간이
카멜레온 다용도 토르마린 건식족욕기
강아지 샴푸 프로랄 머스크향 750ml 1P 셀프 목욕
피죤 건조기시트 섬유유연제 미스틱레인 40매 3개
경남제약 레모나산 120포 (20포x6개)

자동차 타이어 스노우 체인 케이블 겨울타이어 미끄럼방지 눈길 빙판길 오토바이 아이젠 폭설 비상용
칠성상회
360도 회전 드론 스피닝스타LED 장난감
칠성상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