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손희정의 K열 19번] 모지민, 마스터피스 -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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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드랙 아티스트, 배우, 크로키 모델,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2022)의 작가, 트랜스젠더, 성별 이분법에 따라 남자 혹은 여자 둘 중 하나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젠더퀴어, 애연가 제냐의 아내. 모지민은 이 모든 말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행복한 끼순이'다. 또한, 그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한 마디, 한 마디, 모지민이 스스로를 묘사하기 위해 쏟아내는 표현들 속에는 관습적인 틀거리에 들어맞지 않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그 시간 속에서 쌓아온 사유의 깊이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다큐의 제목 ‘모어(털난 물고기, 毛魚)’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이자 세상이 허락한 자리 그 이상(more)을 추구해 온 그의 삶에 대한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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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모지민은 1978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가 획일적으로 따라 하는 국민 체조를 저 혼자 발레로 ‘승화’시킬 정도로 끼 넘치고 재능 있는 아이에게 무용을 가르쳤다. 덕분에 그는 목포예술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옛날에, 그 시골에서 100만 원짜리 발레복을 해 입혀서 서울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부모는 모지민을 귀애했다. '딸 같은 아들'이 사람들과 잘 섞여서 사랑받으며 살았으리라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모지민은 끊임없는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호모 새끼, 뒤져라, 병신 같은 새끼.” 그가 기억하는 지방에서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발레는 모지민에게 일종의 탈출구였다. '지긋지긋한 지방을 벗어나 서울에 가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그 ‘대단’하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나 모지민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학교생활이 시작된 첫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남자 선배가 그의 뺨을 후려치며 말했다. “너, 그 여성성 버려.” 모지민은 또다시 뭍으로 떠밀려 올라온 물고기처럼 헐떡거려야 했다. 춤은 그가 자신을 표현하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무용’이라는 시스템 자체는 그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결국, 그에게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되어 준 곳은 이태원의 클럽 ‘트랜스’였다.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렇게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모지민은 드랙 아티스트가 되었다. 드랙퀸 모지민은 '부끄러움 없이' 마음껏 미쳐버릴 수 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서의 시간이 그저 즐거웠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애증의 인연. 그것이 어쩌면 드랙과 모지민의 관계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연인 제냐가 있었다. 20여 년을 함께 하면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해 왔지만, 서로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일생의 파트너라는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져 왔다. 다큐에서 모지민은 제냐와 함께 고향 집을 찾는다. 부모와 남편과 함께 저녁을 차려 먹은 후, 모지민은 20여 년 전 아버지가 사 준 100만 원짜리 발레복을 꺼내 입는다. 그리고 고향집 마당 잔디밭에서 작은 발레 공연이 펼쳐진다. 그 순간, 모지민의 삶을 지탱해준 온갖 빛나는 것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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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가 선보이는 이접(異接)의 미학

<모어>의 감독 이일하의 전작은 <카운터스>로, 이 작품은 일본의 반인종주의, 반소수자혐오 시민운동인 카운터스의 활동을 따라간다. 카운터스는 ‘재일조선인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일명 재특회와 싸워왔고 일본의 혐오표현금지법 제정 등을 이끌어냈다. 다큐는 특히 전직 야쿠자 출신의 자칭 ‘상남자’ 다카하시에 집중했다. 그는 비밀 결사대 ‘오토코쿠미(男子組織, 남자 조직)’을 만들어 “진짜 우익이라면, 진짜 남자라면!”을 외치며 재특회와 무력으로 충돌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카운터스'라는 모순적인 모습을 담으면서, 이일하는 일본 학원 액션물의 장르 관습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카운터스>는 남성성의 신화를 그려온 장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 신화의 이면을 질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다카하시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카메라를 돌리면서, 이일하는 또 다른 장르를 시도한다. <모어>는 인간 모지민의 삶을 다루는 휴먼 다큐멘터리와 트랜스젠더 드랙퀸 모어의 퍼포먼스를 담아내는 퀴어 뮤지컬 형식을 오가면서, 관객들을 모어(MORE)한 시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혼종 자체가 모지민이 살아온 시간의 성질이기도 하다.

다큐는 사회적 편견 속에서 때로는 의미가 확정되어 버리기도 하는 ‘퀴어’라는 이름을 넘어 자신의 모습 그 자체로 ‘인간’이고자 하는 모지민과 기꺼이 ‘기이한 자(queer)’가 됨으로써 자기 자신일 수 있는 드랙퀸 모어의 다중 존재론을 구체적으로 서사화하기 위해 서로 이질적인 것들을 이어 붙이는 이접(異接)의 미학 선보인다. 모지민의 신체는 도시와 농촌, 광화문 광장과 시골 농가, 한강 다리와 논두렁, 지하철과 설경의 숲,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돌출해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무용가로서 훈련받아 온 신체는 깎아 놓은 조각상처럼 눈부시고, 모지민은 이 신체를 정확하게 컨트롤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통제함으로써 그는 세상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놀라운 장면들을 연출해 낸다. 진부한 세계의 리듬으로부터 신체를 빼내어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탈신도주(脫身逃走)의 순간들. 다큐는 이 장면들에서 급진적으로 퀴어해진다.

세계의 견고한 경계들을 흐르는 물을 따라 헤엄치듯 유연하게 타고 넘는 자. 오랜 시간의 고투 속에서 비로소 '행복한 끼순이'가 된 존재. 모지민, 그는 그 자체로 마스터피스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모어>는 “모지민의 리듬”이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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