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변#1710] 친구
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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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7 13:19
어릴때 우리집은 태백 탄광촌에서 아버지 고향인 횡성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오지에 황토와 볏짚을 뭉쳐 구들집을 지었다. 집 옆에는 축사를 지었다. 평생 버스기사를 하며 모은 전재산은 송아지 12마리가 되었고, 중학생이던 나는 하루아침에 목동이 되었다.
집을 짓는 6개월 동안 전학절차가 미뤄지고, 그동안 나와 동생은 휴일에 한 번씩 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 갔다. 어디나 그렇듯 시골 동네에는 목소리 좀 내는 애들이 있다. 전학을 앞둔 나에게 동급생이라며 한 친구가 다가왔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뭘 좋아하는지, 이것저것 물으며 고인물의 위엄을 보였다. 흑빛 가득한 탄광촌에 익숙했던 나에게 초록 들판과 옥색 강물은 신천지였다. 그 친구에게 난 강에서 고기를 잡고 싶다고 했다.
그는 존재감을 과시할 절호의 찬스를 얻은 눈빛이었다. 전학 선물로 낚싯대를 사주겠다며 나를 한참 떨어진 읍내로 데리고 갔다. 자기도 하나 사서 같이 낚시하러 가자고 했다. 이방인이었던 나에게 그 친절은 너무도 고마웠다.시골상점들은 대부분 만물상 형태다. 매대에 낚시와 그물 등이 많이 걸려 있는 상점으로 그는 씩씩하게 들어 갔다. 걸려 있던 대나무 낚싯대를 가르키며 호탕하게 묻는다.
“저거 얼마에요?”
당장이라도 사겠다는 모습에 상점 주인은 재빨리 대답 했다.
“1,700원!”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 친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것이다.그 친구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얼마를 예상하고 온 것인지, 평소에 낚싯대를 사 본 적이 없는 것인지, 시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었던 것인지, 상황을 모르던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입구에 서있던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주인에게 말했다.
“돈 가지고 올테니 이거 2개 준비해 주세요.!”
그의 당당함은 세계 최강이었으나 본능적으로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에 휩싸였다. 상점을 나오면서 그는 낚싯대는 준비가 됐으니 전학 오면 자기가 아는 포인트에 가자고 한다. 그의 표정은 분명 읍내로 오기 전과 달랐다. 고마운 마음만 간직하고 낚싯대 일화는 그렇게 해프닝으로 넘겨 버렸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니었나 보다.
그 뒤로 그 친구는 그 길을 피해 다녔다. 학교를 가거나 버스를 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할 길인데 굳이 뒤로 돌아서 다녔다. 그러면서도 동네에서는 큰 소리를 쳤다. 그 상점 주인이 불친절 하다며 다른데 가라고 조언까지 한다. 반면 내가 그곳에 갔을 때 상점주인은 친절하게도 그 친구 안부를 묻는다.
전학절차가 완료 되어 학교에 다니기 시작 했다. 학교에서 그 친구는 동네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소외 되었으며 어울리는 친구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친구들에게 그의 이미지는 ‘거짓말장이’였다. 그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던 내가 마침 등장했고,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그는 모처럼 존재감을 과시해 봤던 것이다.
나는 그의 진심은 믿는다. 그의 허세로 인해 내가 피해 본 것도 없다. 다만 자기가 내뱉은 말 때문에 그 상점을 피해 다니던 초라한 모습, 자기가 원인 제공 해놓고 그 상점 주인을 비난하는 비겁함, 그럼에도 남이 모를 것이라 믿는 무지함이 안타까웠다.
나는 곧 주류가 되었고(시골이다 보니 엘리트 취급을 받았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나를 허세 부릴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학교에서 접점이 없다 보니 점차 그와 거리가 멀어졌다. 동네에서는 어린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노는 모습이 한 번씩 보였다. 그 후 뜻하지 않게 우리집은 다시 이사를 했다. 학교 친구들은 아쉬움에 울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래픽 : 가피우스요즘 왜 갑자기 그 친구가 떠오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어디서라도 완장은 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언을 진실로 둔갑시키고, 허세를 폭력으로 진화 시키며, 염치를 뻔뻔함으로 포장하는 것이 완장이기 때문이다. 완장이 공해를 넘어 흉기가 되는 세상에 살다 보니, 버드나무 가지에 바늘 달아 바위틈 꺽지를 잡던, 그것으로 하루가 족했던 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집을 짓는 6개월 동안 전학절차가 미뤄지고, 그동안 나와 동생은 휴일에 한 번씩 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 갔다. 어디나 그렇듯 시골 동네에는 목소리 좀 내는 애들이 있다. 전학을 앞둔 나에게 동급생이라며 한 친구가 다가왔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뭘 좋아하는지, 이것저것 물으며 고인물의 위엄을 보였다. 흑빛 가득한 탄광촌에 익숙했던 나에게 초록 들판과 옥색 강물은 신천지였다. 그 친구에게 난 강에서 고기를 잡고 싶다고 했다.
그는 존재감을 과시할 절호의 찬스를 얻은 눈빛이었다. 전학 선물로 낚싯대를 사주겠다며 나를 한참 떨어진 읍내로 데리고 갔다. 자기도 하나 사서 같이 낚시하러 가자고 했다. 이방인이었던 나에게 그 친절은 너무도 고마웠다.시골상점들은 대부분 만물상 형태다. 매대에 낚시와 그물 등이 많이 걸려 있는 상점으로 그는 씩씩하게 들어 갔다. 걸려 있던 대나무 낚싯대를 가르키며 호탕하게 묻는다.
“저거 얼마에요?”
당장이라도 사겠다는 모습에 상점 주인은 재빨리 대답 했다.
“1,700원!”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 친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것이다.그 친구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얼마를 예상하고 온 것인지, 평소에 낚싯대를 사 본 적이 없는 것인지, 시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었던 것인지, 상황을 모르던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입구에 서있던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주인에게 말했다.
“돈 가지고 올테니 이거 2개 준비해 주세요.!”
그의 당당함은 세계 최강이었으나 본능적으로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에 휩싸였다. 상점을 나오면서 그는 낚싯대는 준비가 됐으니 전학 오면 자기가 아는 포인트에 가자고 한다. 그의 표정은 분명 읍내로 오기 전과 달랐다. 고마운 마음만 간직하고 낚싯대 일화는 그렇게 해프닝으로 넘겨 버렸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니었나 보다.
그 뒤로 그 친구는 그 길을 피해 다녔다. 학교를 가거나 버스를 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할 길인데 굳이 뒤로 돌아서 다녔다. 그러면서도 동네에서는 큰 소리를 쳤다. 그 상점 주인이 불친절 하다며 다른데 가라고 조언까지 한다. 반면 내가 그곳에 갔을 때 상점주인은 친절하게도 그 친구 안부를 묻는다.
전학절차가 완료 되어 학교에 다니기 시작 했다. 학교에서 그 친구는 동네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소외 되었으며 어울리는 친구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친구들에게 그의 이미지는 ‘거짓말장이’였다. 그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던 내가 마침 등장했고,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그는 모처럼 존재감을 과시해 봤던 것이다.
나는 그의 진심은 믿는다. 그의 허세로 인해 내가 피해 본 것도 없다. 다만 자기가 내뱉은 말 때문에 그 상점을 피해 다니던 초라한 모습, 자기가 원인 제공 해놓고 그 상점 주인을 비난하는 비겁함, 그럼에도 남이 모를 것이라 믿는 무지함이 안타까웠다.
나는 곧 주류가 되었고(시골이다 보니 엘리트 취급을 받았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나를 허세 부릴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학교에서 접점이 없다 보니 점차 그와 거리가 멀어졌다. 동네에서는 어린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노는 모습이 한 번씩 보였다. 그 후 뜻하지 않게 우리집은 다시 이사를 했다. 학교 친구들은 아쉬움에 울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래픽 : 가피우스요즘 왜 갑자기 그 친구가 떠오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어디서라도 완장은 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언을 진실로 둔갑시키고, 허세를 폭력으로 진화 시키며, 염치를 뻔뻔함으로 포장하는 것이 완장이기 때문이다. 완장이 공해를 넘어 흉기가 되는 세상에 살다 보니, 버드나무 가지에 바늘 달아 바위틈 꺽지를 잡던, 그것으로 하루가 족했던 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