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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편지 13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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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자리에서 '정체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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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직장, 사회, 또래관계나 살고 있는 나라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생각이 드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 살면서 이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 같습니다. '나'라는 자아를 이루는 뿌리는 여러
영역에 뻗어 있지만, 그만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추상적인
범위의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김새, 성격, 성별, 태어난 시대, 지역, 가족의 형태, 성적 지향성 등 수많은
요소가 모이고 얽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독특한 개성을 만들고, 그 개성은 환경에 따라 때로는 주류이고 때로는 비주류에 속하기도
합니다. 단요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장편소설 『캐리커처』는
이러한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주현과 어렸을 때 호주 유학을 떠났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승윤이 재회하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적 맥락을 자각하고 각자가 겪어온 소외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타인의 시선이 정의한 나의 '정체성'이 이 사회에서 특정한 배역만을 허락하고 있다면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될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캐리커처(caricature)란 얼굴을 그린 회화 작품을 칭하는 말로, 보통의 회화 작품과 다르게 얼굴의
특정 부분이 익살스럽게 과장되어 있습니다. 보통 인간의 여러 가지 정체성을 설명할 때 우리는 다양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이는 본래 본인이 속한 공동체나 관계에 따라 여러 개의 마스크를 갈아 끼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요 작가는 주현이나 요한에게 주어진 것은 마스크가 아닌 캐리커처라고 말합니다. 필연적으로 어딘가를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종종
오해와 편견에 끼워 맞춘 모습을 보여야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들. 당신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인지, 이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과 해명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존재들이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단일 민족 국가라는 환상을 지켜왔지만, 급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쓰인 소수자 서사에 목말라 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어줄 작품, 『캐리커처』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배승연 (청소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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