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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편지 136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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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회 사계절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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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갖춘마디'는 악보에서 박자표의 박자 수보다 적게 채워진 마디입니다. 못갖춘마디로 곡을 시작하면
시작음은 약해지고 전체 곡의 박자 균형은 흐트러지지만, 그로 인해 곡 전체에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주인공 소이의 노래도
이와 같이 서툴고 미약하게 시작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노래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쏟아내지 않으면 결코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있습니다. 대형 화재 사건에서 다른 이들의 목숨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둔 소이의 감정도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의인이라며 칭송하고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말이 소이의 마음속에는 걷어낼 수 없는 앙금으로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끝내 데뷔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던 연습생 생활과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부모님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뿔뿔이 흩어진 채
사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자책감.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있던 소이에게 설상가상으로 덮친
아버지의 죽음까지.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대신 처음 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로 택한 아버지를 소이는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그 이후로 소이는 자신의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가 구해준 아이의 곁을 맴돌고
친구와 함께 시 수업에 다니면서 감춰뒀던 마음을 한 겹씩 드러내는 법을 배웁니다. 시와 랩을 통해 입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한
마음은 멋대로 형태를 갖추고 단단해져 갑니다. 갑옷과 방패처럼 두르고 있던 장벽을 하나씩 깨고 나와 마침내 꺼내어놓는 말은
서툴지만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틈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듯이, 깨어지며 시작되었지만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어떤
출발.
『못갖춘마디』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과 맞닥뜨렸을 때,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완전한 박자를 갖추지 못하고 시작된 노래여도 괜찮습니다. 비트가 이어진다면 언제건 그 노래에 화답할 사람이, 그리고 그
노래를 함께해줄 사람이 나타날 테니까요.
- 배승연 (청소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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