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리뷰] 슬픈 근현대사와 멋진 설경을 함께한 도봉산 망월사
망월사는 도봉산의 메인인 도봉탐방지원센터가 아닌 원도봉에서 시작해서, 언제가더라도 그렇게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아무래도 대중교통으로 가기 쉽지 않은 곳이라 그러지 않나 생각합니다. 호젓하게 산을 오르면 도봉산의 험준한 봉우리들인 자운봉, 선인봉, 만장봉 등에 둘러싸여 있어, 특히 겨울철 설경이 절경으로 손꼽힙니다.
눈이 내리면, 망월사 경내, 특히 영산전 앞마당 등에서는 도봉산의 거대한 암봉들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장엄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눈 덮인 바위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망월사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합니다.
여기에 눈이 내리면 번잡함이 사라지고 사찰 특유의 고요함과 청정함이 극대화됩니다. 눈 쌓인 대웅전과 요사채, 그 위로 피어오르는 겨울 산사의 운치는 평화로운 수행 공간으로서의 망월사를 느끼게 합니다. 제가 망월사를 겨울에 찾는 이유입니다. 도봉산 암봉들이 빚어내는 장엄한 흰색의 향연. 고요한 겨울 산사의 청정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코스로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동지 가까운 날이라 조금 늦게 약 9시부터 시작했는데 조금만 올라도 설경이 장난이 아닙니다. 다른 곳은 대부분 눈이 녹았는데 여기는 음지라서 그런지 설경이 장난이 아닙니다.
중간쯤 나오는 샘이 덕재샘입니다. 제가 처음에 이곳을 올랐을 때는 맛있게 이 덕재샘에서 물을 마셨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이곳도 물을 마실 수 없는 샘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좀 더 오르면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인 민초샘이 있습니다. 민초샘이 지금도 마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민초샘과 망월사가 갈라지는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망월사쪽으로 우회전합니다.
이제 망월사 도착입니다. 망월사는 규모가 제법 큰 규모입니다. 참고로 매주 일요일 점심때는 무료 국수공양을 한다고 합니다. 저희는 라면을 따로 준비해서 국수를 먹지는 않았습니다.
망월사는 천년고찰이라는 말이 충분한 오래된 고찰입니다. 워낙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특히 근현대사의 굴곡진 한 페이지를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639년, 신라 선덕여왕 8년 해호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망월사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절의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 달 모양의 월봉이 있어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또 하나는 신라가 망한 후 경순왕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하며 신라의 도읍인 월성(月城), 그러니까 지금의 경주를 바라보며 나라를 그리워했다는 슬픈 역사적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망월사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위안스카이(袁世凱)의 현판과 근대사의 흔적입니다. 다른 나라 대웅전에 그 당시 청나라 실력자의 현판이 걸려있는 것이죠. 이 현판은 구한말 조선 주재 청나라 공사였던 위안스카이, 한자로는 원세개라고 쓰던 이가 쓴 것입니다. 현판 왼쪽에는 駐韓使者袁世凱(주한사자원세개), 光緖辛未仲秋之月(광서신미중추지월)라고 적혀 있어, 그가 조선 주재 사자로서 1891년 가을에 이 절에 들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파견되어 약 10년간 사실상 '조선 총독처럼 행세하며 내정에 깊숙이 간섭했습니다. 고종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고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을 좌절시키는 등 한국 근대사에서 청나라의 압박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망월사의 위안스카이 현판은 아름다운 고찰 안에 숨겨진 구한말 조선의 굴욕적 외교 현실과 외세의 간섭이라는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적인 유물로 남아있습니다. 탐욕과 배신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위안스카이의 글씨가 청정한 불교 사찰에 걸려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이제 이곳까지 오른 기쁨이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도봉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 있는 이 풍경은 겨울의 도봉산과 망월사를 대표하는 풍경입니다.
약 700m 정도, 고도로는 100m 남짓 더 올리면 포대능선입니다. 포대능선은 박정희정권시절 북한의 침공을 막을 목적으로 대공포를 능선을 따라 설치한 까닭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군 생활하셨던 선배님들은 정말 고생 많으셨을 듯 합니다.지금은 대공포는 없어지고, 이름만 그대로 포대능선으로 남아 있습니다. 도봉산에서 사패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지요. 다만 오늘 습도가 높아서인지 보이는 것이 없네요. 다행히 바람이 가득 불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만에 산에서 컵라면 하나 먹습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며 라면을 먹으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라면이 있나 싶네요. 라면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헬기가 옵니다, 아마 누군가 다치신 것 같은데, 큰 부상이 아니시기 바랍니다. 헬기가 한참을 돌더군요.
멋진 풍경을 다시 한 번 눈에 담고 안전하게 하산합니다. 겨울철에 다녀오기 정말 좋은 코스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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