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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편지 1393호 |
| NG 컷들의 뜨거운 연대기 |
완성된 영화에는 감독이 허락한 오케이 컷만 남습니다. 흔들린 카메라, 엉킨 대사,
배우의 부정확한 감정 처리 등은 소위 NG라고 불리며 편집실에서 모두 컷 당합니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그렇게 살아남은
것들의 집합이겠지요. 우리의 삶이 그렇다면 어땠을까요? 민망하고 어긋난 순간들은 다 잘라내고, 확신에 차고 성공했던 날들만 이어
붙여 상영할 수 있다면 말이죠.
아쉽게도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오히려 편집되지 않은 삶이 훨씬 더 우리의 현실과 가깝죠. 정대건 소설가의 데뷔작 『GV 빌런 고태경』은 그 누더기 같은 삶을 비추는 소설입니다.
서른세 살, 첫 독립 장편영화를 거하게 말아먹은 영화감독 조혜나.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영화를 하게 된 자기 자신을 탓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전 남자친구가 주연을 맡은 영화 GV에 게스트로 불려 나가게 되죠. 그녀는 뜻밖의 인물과 조우하게 됩니다.
유명한 'GV 베레모 빌런' 고태경이었죠. 그의 질문에 화를 참지 못한 혜나의 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혜나는 복수를
결심합니다. 고태경을 주인공으로 한 조롱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말이죠.
그러나 카메라를 들이대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저 빌런인 줄 알았던 그는 여전히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죠. 혜나는 그를 찍으면서 계속 자신에게 묻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실패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는 그만큼
영화를 사랑하는가. 이 소설은 씨네필 이야기지만, 더 나아가 실패하고 수없이 절망했음에도 계속 사랑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 "꼭 뭐가 되어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니까요.
시간이 흘러도 좋은 소설에는 이렇게 빛이 납니다. 2020년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이 6년 만에 개정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빛이 납니다. 작가 본인이 "나의 대표작"이라고 꼽을 만한, 이 뜨거운 연대기를 읽으며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김유리 (소설/시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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