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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편지 13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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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자리에 차려진 가장 맛있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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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늘 일상의 틈새에서 마법을 찾아냅니다. 구름빵을 먹고 하늘을 날거나 알사탕으로
타인의 속마음을 듣는 것처럼, 그가 창조한 세계는 비현실적이지만 기묘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어른들만 잠시 잊고 있었던 어떤 감각처럼 말이죠.
신작 『구멍청』은
보름달 뜬 밤, 산속 ‘달토끼 식당’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곳은 아무 때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요리가 완벽하게 완성되었을 때만
손님을 맞이하는 고집스러운 식당이지요. 달토끼들이 여드레 밤낮을 들여 완성한 메뉴는 바로 ‘구멍청’. 이름 그대로 구멍을 오래
달여 만든 특별한 음식입니다.
식당의 첫 손님은 털이 헝클어진 채 들어온 곰돌이 인형입니다. 곰돌이는 지친 기색으로 말합니다. “아기
주인은 지금 깊이 잠들었고, 악몽을 꾸지 않도록 잘 달래어 재워 두고 나온 터라 앞으로 한두 시간은 괜찮지 싶다”고요.
달토끼들은 “나아질 것”이라는 말 대신, 구멍청 한 그릇을 내어줄 뿐입니다. 따끈한 구멍청을 모두 비운 곰돌이는 말합니다.
“아…… 한동안은 잊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리웠던 겨울잠도, 야생의 포효도, 그리고 벌꿀도……”
책 속에서 ‘구멍’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무언가 빠져나간 물리적인 빈자리일 수도 있고, 아무리
메워도 자꾸만 허기지는 마음의 결핍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 구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독자는 텅 빈
그릇 같은 ‘구멍’ 위에 각자의 상실과 허기를 자유롭게 투영하게 됩니다.
어딘가 허전함이 가시지 않는 날, 달 아래 노란 불빛을 따라가 보세요. 운이 좋다면 당신을 위한 구멍청
한 그릇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 이곳의 달토끼들은 옷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니, 그들을 위해 멋진 옷 한 벌 준비해
가는 것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송고운 (유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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