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 Economy
2025년 이전 게시판 보기

[장엘리의 도시는 말한다]㉒터키 이스탄불–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만 도시의 심장

금각만 모습. 저  멀리 갈라타 탑이 보인다. / 사진 픽사베이 갈무리

현대의 도시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경제 전략의 최전선이다. 세계 각국은 도시 브랜드를 기반으로 투자 유치, 글로벌 인재 확보,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름’은 곧 ‘전략’이며, 도시 간 경쟁력의 상징적 신호로 기능한다. 본 연재는 글로벌 도시의 지명 유래를 통해 경제, 역사, 문화, 외교의 맥락을 통합적으로 조명하고, 독자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이름과 항만이 만든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항구 도시 가운데 하나다. 도시 이름 자체가 상징적이다.

‘이스탄불(Istanbul)’은 그리스어 'Eis tin Polin', 곧 '그 도시로, 도시 안으로'라는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이 '도시'라고 말할 때 곧바로 이곳을 가리킨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이스탄불은 언제나 유일한 도시, 중심 도시로 군림해왔다.

이스탄불 도시를 감싼 보르포루스 해협과 도심 모습 / 사진 픽사베이 이스탄불 도시를 감싼 보르포루스 해협과 도심 모습 / 사진 픽사베이

그 지위를 가능하게 한 것은 천혜의 입지였다. 도시를 감싸는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해, 그리고 깊숙이 들어온 금각만(Golden Horn)은 스스로 항만이 되는 지형이었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유일한 길목, 두 대륙을 연결하는 관문은 곧 제국의 생명줄이었다. 비잔틴과 로마 제국 시절 금각만 입구에는 적선을 막기 위해 거대한 쇠사슬이 걸렸고, 항만과 성벽은 수도를 지켜내는 방패로 작동했다. 항만은 단순한 부두가 아니라 제국의 존속을 떠받치는 심장이었다.

무역과 문명의 교차로

이스탄불의 항구는 수천년 동안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거대한 교역 무대였다. 흑해에서 온 곡물과 목재, 아라비아 반도에서 실려온 향신료와 비단, 중앙아시아에서 온 은과 말들이 이곳을 거쳐 유럽으로 흘러갔다. 반대로 이탈리아와 지중해 도시에서 온 와인, 유리, 직물도 항구에 쌓였다. 그리스 상인의 곡물선, 로마의 군선, 비잔틴의 비단무역선, 오스만의 향신료 무역선이 차례로 이 바다를 채웠다.

바다에서 바라본 톱카프 궁전 모습 / 사진 픽사베이 바다에서 바라본 톱카프 궁전 모습 / 사진 픽사베이

그러나 항구가 실어 나른 것은 상품만이 아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 헬레니즘과 르네상스, 수학과 천문학, 미술과 음악이 항만을 통해 드나들며 도시를 다문화적 용광로로 만들었다. 비잔틴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 학자들의 지식이 유럽 르네상스로 이어졌고, 오스만 시기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학자·예술가들이 이 항구를 통해 모였다.

항구 주변은 곧 제국의 얼굴이었다. 톱카프 궁전은 바다에서 곧장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았고,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는 항만을 마주하며 제국의 정신적 권위를 드러냈다. 바닷길로 들어오는 방문객들은 곧바로 제국의 건축과 권력, 종교적 상징을 마주했다. 항만과 권력, 교역과 종교가 맞물리며 이스탄불은 단순한 도시를 넘어 문명의 교차로이자 제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의 항만 네트워크와 도시 정체성

금각만 모습. 저  멀리 갈라타 탑이 보인다. / 사진 픽사베이 갈무리

시간이 흐르며 항만의 기능은 달라졌지만, 이스탄불의 바다는 여전히 도시의 심장이다. 갈라타포트(Galataport)는 현대적 크루즈 터미널과 문화·상업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하이다르파샤(Haydarpasha)는 아시아 측 물류 관문으로 남아 있다. 쿰포트(Kumport)는 유럽 측 최대 컨테이너 항구로 도시의 물동량을 책임지고, 에미노뉘와 금각만은 전통적 부두로 시민들의 일상과 역사를 잇는다.

이스탄불은 단일 항구가 아니라 복합 항만 네트워크 전체가 도시를 지탱하는 구조다. 이 덕분에 오늘날에도 튀르키예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국가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한다. 동시에 로마, 비잔틴, 오스만의 수도였던 경험은 도시의 다문화적 DNA로 남아, 항만은 단순한 물류 거점이 아니라 문명 융합의 현장으로 기능해왔다.

 

맺음말 – Part 2의 끝에서

이스탄불의 항만은 방패였고, 교역의 창구였으며, 오늘날에는 글로벌 물류와 관광의 허브다. 그러나 이 도시의 위상은 단순한 항만 도시를 넘어선다. 이스탄불이라는 이름 자체가 곧 제국을 지칭했듯, 도시 이름 속에 무역과 산업의 흔적이 새겨진 드문 사례였다.

텔아비브가 '봄의 언덕'으로 미래를 열어가고, 두브로브니크가 '자유의 도시'로 외교와 무역을 이어갔듯, 로테르담과 로스앤젤레스가 항만을 통해 세계경제와 맞닿았듯, 이스탄불은 이름 그대로 ‘그 도시’, 곧 세계의 중심이었다.

Part 2에서 살펴본 항만 도시들은 저마다 이름에 그 시대의 산업과 무역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이제는 시선을 한국으로 옮길 차례다. 지중해와 유럽의 도시들이 이름에 무역과 산업의 흔적을 남겼듯, 우리 대한민국의 도시 이름 속에도 경제와 성장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Part 3에서는 그 기억을 따라 한국 지역경제와 도시 성장의 이야기를 풀어가 보고자 한다.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labmoneta618@gmail.com 

※ 외부 기고는 콕스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엘리 교수는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이자, 국립외교원/외교부  외래교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사 랩 모네타(Lab MoNETA) 대표 컨설턴트다. 방송 및 언론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그는 삼표그룹 홍보팀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TV, 내외경제TV, 아리랑TV 등에서 앵커 및 콘텐츠 기획자로 활약했다.

현재는 도시 기반의 경제 커뮤니케이션 전략, 스타트업 국제 진출 컨설팅, 글로벌 IR 피칭 등을 지원하며,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실전형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0 Comments

티티경인 하이샤파 연필깎이 KI-200
칠성상회
자동차 틈새솔 차량 틈새 브러쉬 초미세모 DD-13136
칠성상회
(이거찜) 빅 파스텔 필통 대용량 지퍼 학생 펜케이스/연필통/연필파우치/안경집/다용도파우치
칠성상회
현대모비스 순형정 와이퍼 싼타페MX5 650mm 450mm 운전석 조수석 세트
칠성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