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엘리의 도시는 말한다]㉗세종시, 행정수도 이상의 경제 실험실

현대의 도시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경제 전략의 최전선이다. 세계 각국은 도시 브랜드를 기반으로 투자 유치, 글로벌 인재 확보,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름’은 곧 ‘전략’이며, 도시 간 경쟁력의 상징적 신호로 기능한다. 본 연재는 글로벌 도시의 지명 유래를 통해 경제, 역사, 문화, 외교의 맥락을 통합적으로 조명하고, 독자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세종’이라는 이름, 이상으로부터 태어난 도시
세종시는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머리로 만든 도시’다.
대부분의 도시는 사람과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태어나지만, 세종은 정반대였다. 사람보다 도면이 먼저였고, 일상의 풍경보다 행정 효율이 우선됐다. 도시는 원래 ‘발로 살아가는 곳’인데, 세종은 ‘머리로 설계된 공간’이 된 셈이다.
그 출발점엔 오래된 국가적 과제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 있었다.
2000년대 초, 국토의 균형을 다시 세우자는 거대한 실험이 시작됐다. 서울의 행정 기능을 분산시키고, 새로운 중심을 세우겠다는 결심.
그 대상지는 충청남도 연기군 일대. 나라의 중심부이자, 바다와 내륙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서울에서 120㎞, 대전에서 30분 거리. 행정 수도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지리였다. 그 실험의 무대가 바로 ‘세종’이었다. 그렇게 세종은 태생부터 철저히 계획된 도시로 만들어졌다.
정부청사, 국책연구기관, 공공기관이 먼저 들어섰고, 그 위에 도로와 주거단지, 문화시설이 덧입혀졌다. 모든 것은 ‘계획된 완벽함’을 향해 움직였지만, 막상 도시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났다.
도시의 이름은 공모를 통해 ‘세종’으로 결정됐다. 세종은 ‘세상[世]의 으뜸[宗]’이라는 뜻처럼,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대표하겠다는 상징이 담겼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으로 백성과 소통했던 것처럼, 이 도시는 ‘행정과 국민을 잇는 새로운 언어’를 꿈꿨다.
2012년 7월,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특별자치시가 공식 출범하며 그 실험이 현실이 되었다.
도시의 설계도는 단순했다. 서울의 기능을 나누고, 균형 있게 재배치하자는 것. 그러나 그 단순한 원칙은 곧 엄청난 도전으로 바뀌었다. 한강변의 600년 수도를 옮긴다는 일은 단순히 건물을 이전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의 뇌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종특별자치시’는 태생부터 계획의 도시였다. 정부 청사, 국책 연구기관, 공공기관이 먼저 들어서고, 그 위에 도로와 주거단지, 문화시설이 덧입혀졌다. 그 모든 것은 '계획된 완벽함'을 향해 나아갔지만, 정작 도시가 숨 쉬기 시작한 이후에 드러난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도시는 설계로 만들어지지만, 완성은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세종은 지금, 그 진실을 증명하고 있는 도시다.
행정에서 경제로 - 실험실이 된 도시
세종의 거리를 걸으면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도로는 곧고, 건물은 정연하며, 도시의 구조는 완벽에 가깝다. 그러나 그 질서 속엔 묘한 정적이 흐른다. 한낮에도 텅 빈 상가, 반쯤 닫힌 셔터,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버스. 겉으로는 완벽한 도시지만, 속은 아직 ‘살아가는 도시’가 되지 못한 셈이다.
처음 세종은 ‘행정의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란 본질적으로 사람이 일하고 소비하고, 관계를 맺는 유기체다. 서류와 정책만으로는 숨을 쉴 수 없다.
그 한계를 깨닫는 순간부터 세종은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이 도시를 '행정의 중심'이 아니라 '경제의 실험실'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지금 세종의 산업지도는 흥미롭다. 자율주행과 스마트모빌리티, 디지털 헬스케어, 양자산업, 정보보안, 디지털콘텐츠 산업이 도시 곳곳에서 테스트되고 있다. 행정의 효율성을 넘어 ‘데이터로 움직이는 도시’로의 전환이 한창이다. 시 전체가 거대한 테스트베드가 되고, 교통·의료·물류가 연결된 '스마트시티의 프로토타입'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이 언제나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설계된 도시일수록, 사람의 예측 불가능한 리듬을 담아내기 어렵다. 세종의 거리에는 아직 ‘중심’이 없다. 6개의 생활권으로 나뉜 구조는 균형을 담보했지만, 결과적으로 도심의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정부청사는 도시 한가운데를 막는 거대한 벽이 되었고, 생활권은 각각의 ‘작은 섬’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세종시의 밤은 유난히 조용하다. 행정기관 불이 꺼지면 도시 전체가 함께 잠듯 것처럼, 호텔은 비고, 상가의 절반은 공실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정작 청년들이 머무는 공간은 부족하다. 스타트업은 시작했지만, 정작 머물 곳이 없다. 도시는 생동감 대신 계획의 질서를 품고 있다. 세종시가 다시 성장하려면 행정의 리듬 위에 경제의 리듬, 나아가 문화의 리듬을 얹어야 한다. 그 리듬이야말로 도시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도시, 브랜드로서의 세종
도시 브랜드는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사람의 기억으로 완성된다. 세종은 지금, 그 브랜드의 첫 장을 쓰고 있다. ‘행정수도’라는 기능적 이름을 넘어, ‘경제 실험실’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말이다.
그 중심에는 '스스로 작동하는 도시'라는 개념이 있다.
세종은 이제 정부가 아닌 시민의 손에서 움직이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 안에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실험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지역경제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아 보인다. 과도한 도로 설계와 중심 상권 부재, 행정청과 행복청의 이원화된 구조, 교통의 불균형, 이 모든 것들 것 도시의 브랜드를 희미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패 또한 실험의 일부이므로 세종의 진짜 실험은 '완벽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로 바꾸는 것'이다.
도시의 이름 ‘세종’은 단지 위대한 왕의 존칭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을 상징한다.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든 왕처럼, 세종시는 국민이 살기 위한 공간의 언어를 새로 쓰고 있다.
세종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도시는 누가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도시는 행정이 아니라, 삶이 만든다”고…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labmoneta6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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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엘리 교수는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이자, 국립외교원/외교부 외래교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사 랩 모네타(Lab MoNETA) 대표 컨설턴트다. 방송 및 언론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그는 삼표그룹 홍보팀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TV, 내외경제TV, 아리랑TV 등에서 앵커 및 콘텐츠 기획자로 활약했다.
현재는 도시 기반의 경제 커뮤니케이션 전략, 스타트업 국제 진출 컨설팅, 글로벌 IR 피칭 등을 지원하며,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실전형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