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엘리의 도시는 말한다]⑬로스앤젤레스-헐리우드보다 항만이 더 중요한 이유
현대의 도시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경제 전략의 최전선이다. 세계 각국은 도시 브랜드를 기반으로 투자 유치, 글로벌 인재 확보,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름’은 곧 ‘전략’이며, 도시 간 경쟁력의 상징적 신호로 기능한다. 본 연재는 글로벌 도시의 지명 유래를 통해 경제, 역사, 문화, 외교의 맥락을 통합적으로 조명하고, 독자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천사의 도시’라는 이름 아래
LA에 갈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의도적으로 창가에 앉으라는 이야기가 있다.
‘Los Angles(로스앤젤레스)’. 이름만 들어도 풍경이 머릿속에 자동재생 되는 곳이다. 햇살, 야자수, 웨스트코스트 음악, 그리고 헐리우드가 있는 도시.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로스앤젤레스를 처음 보는 눈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관광객이 아닌 관찰자의 눈으로 말이다.
‘LA’라는 이름은 사실 ‘천사들의 여왕에게 바친 마을’이라는 긴 기도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El Pueblo de Nuestra Señora la Reina de los Ángeles.”
이토록 거대한 도시가 이렇게 조용한 이름을 품고 있다니. 처음 이름의 유래에 대해 들었을 때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이름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면 묘한 여백이 생기기도 한다. ‘천사들의 여왕이시며 우리의 성모께 바쳐진 마을’이라니…
이 글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도시는 이름으로 말한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는 그 이름과는 너무도 다른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거룩하고 고요한 이름으로 말이다.
흥미롭게도 LA는 그 이미지와는 달리 언제나 역동적인 ‘움직임’의 도시로 존재한다. 이 도시가 진짜 날개를 단 건, 헐리우드 스크린 위의 환상이 아니라 바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류와 자본의 흐름 때문이었다.
Port of Los Angeles와 Port of Long Beach. 두 항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LA는 단순한 영화의 무대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관문이자, 동아시아와 북미를 잇는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다.
헐리우드, 그 뒤편의 거대한 무대
로스앤젤레스항은 단일 항만 기준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미국 전체 수입 컨테이너의 40% 이상이 이곳을 거쳐가며, 롱비치항과 함께 보면 그 영향력은 동부 해안지역을 압도한다. 스크린에서는 영화가 상영되지만, 항만에서는 하루에도 수만개의 컨테이너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이 항만의 존재감은 팬데믹 기간에 더욱 선명해졌다. 항구에 수천개의 컨테이너가 멈췄고, 미국 전역의 공급망이 막혔다. 그제서야 많은 이들이 깨달았다. 헐리우드가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항만이 멈추니 도시 전체가 멈췄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 인상적인 사실은, 이 거대한 물류의 흐름에 다시 ‘한국의 금융’이 발을 디뎠다는 점이다. 하나금융그룹은 2025년 8월 약 20년 만에 LA에 새로운 지점을 개설한다. 뉴욕과 뉴저지에 집중되었던 Hana Bank USA의 영업이 이제는 미국 서부의 한인 교포 중심지인 LA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진출은 단순한 ‘리테일 금융’이 아니다. 하나금융그룹은 디지털 플랫폼, 핀테크 생태계, SOHO 기반 금융, 스타트업 연계 전략을 기반으로 LA에 새로운 물류+금융 생태계를 그리려 하고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항만의 도시에서만 가능한 금융 전략이다.
과거 로스앤젤레스를 단순한 소비 도시로 보았다면, 이제는 '자산과 물류, 사람이 흐르는 도시', 그리고 '자본이 다시 정착하는 도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도시의 진짜 주연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카메라 앞이 아니라 선박과 금융 네트워크 위에서 그 답이 나올 것이다.
부산과 LA, ‘컨테이너 이후의 도시’로서
헐리우드는 도시의 이미지에 환상을 입히지만, 도시의 실체를 움직이는 것은 그 뒤에 자리한 항만과 금융, 물류와 이민자 커뮤니티다. 최근 LA항과 롱비치항은 탄소중립과 ESG 기반의 스마트항만 시스템으로 탈바꿈 중이고, 여기에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핀테크와 물류금융을 접목한 투자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 이는 항만의 자동화를 넘어 항만도시의 미래 정체성이 금융과 연결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세계 7위를 자랑하는 부산은 과연 어떠할까? 한국의 대표 해양도시이자, 금융중심지 육성을 꿈꾸는 문현금융단지는 바로 LA와 ‘항만+금융+디지털 산업’이라는 삼각축을 구성할 수 있다.
하나금융의 LA 진출은 단순한 복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히려 한국 금융이 물류 거점을 중심으로 다시 세계와 연결되려는 전략적 전진 기지이자 성격이 강하고, 동시에 앞으로 LA와 나란히 설 수 있는 부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현한 것일 수 있다.
도시에 숨겨진 백스테이지
도시의 본질은 무대가 아니라 백스테이지에 있다.
컨테이너 벨트 위의 리듬, 노동자의 묵묵한 손길, 그리고 자본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방식을 잘 느껴볼 필요가 있다.
로스앤젤레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무대이며, 이제 그 무대 위에 한국의 금융이 다시 발을 디뎠으니 말이다.
“사막 한가운데 바다가 있다면, 그것은 곧 무역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만, 그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이면 된다.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labmoneta6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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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엘리 교수는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이자, 국립외교원/외교부 외래교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사 랩 모네타(Lab MoNETA) 대표 컨설턴트다. 방송 및 언론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그는 삼표그룹 홍보팀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TV, 내외경제TV, 아리랑TV 등에서 앵커 및 콘텐츠 기획자로 활약했다.
현재는 도시 기반의 경제 커뮤니케이션 전략, 스타트업 국제 진출 컨설팅, 글로벌 IR 피칭 등을 지원하며,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실전형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