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엘리의 도시는 말한다]⑮상하이항–세계 물류를 지휘하는 도시의 전략

현대의 도시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경제 전략의 최전선이다. 세계 각국은 도시 브랜드를 기반으로 투자 유치, 글로벌 인재 확보,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름’은 곧 ‘전략’이며, 도시 간 경쟁력의 상징적 신호로 기능한다. 본 연재는 글로벌 도시의 지명 유래를 통해 경제, 역사, 문화, 외교의 맥락을 통합적으로 조명하고, 독자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바다는 더 이상 국경이 아니다. 상하이항이 그것을 증명했다.”
프롤로그 – 세 번의 상하이, 세 개의 시간
2005년 상하이 땅을 처음 밟았다. 그때의 상하이는 아직 '성장 중'인 도시였다. 푸둥의 고층 빌딩은 반쯤만 올라 있었고, 항만은 마치 도심과는 무관한 거대한 창고처럼 도시의 끝자락에 있었다. 와이가오차오 항은 크고 붐볐지만 컨테이너 야적장이 수평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도시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기 보다는 바다와 나란히 서 있었다.
10년 뒤, 2015년. 나는 다시 상하이에 섰다. 양산항은 이미 완공되었고, 바다는 더 이상 물류의 종착지가 아니었다. 정보, 금융, 제조, 물류가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도시와 항만은 이제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엔진’처럼 통합돼 있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상하이를 ‘도시’가 아닌 ‘설계된 네트워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2025년. 또다시 10년이 흘렀다. 그 도시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상하이항은, 이제 세계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이름 없는 부두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상하이(上海)의 이름은 '바다를 향하다'는 뜻이다.
양쯔강 하구에 자리한 이곳은 한때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19세기 중반, 조계지 개항과 함께 서구 무역의 접점으로 떠올랐지만, 본격적인 항만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싱가포르, 홍콩, 부산 같은 경쟁 항만에 비해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된 중국의 도시 전략은 이 지역을 ‘기회의 입구’로 바꿔놓았다. 푸둥 개발과 함께 물류, 조선, 금융, 통관, 제조 산업이 밀집되기 시작했고, 중국 정부는 ‘국가 차원의 항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실현에 옮겼다.
2005년, 중국은 바다 위에 하나의 섬을 만들었다. 바로 양산항 얘기다.
양산항(洋山港)은 상하이항을 구성하는 핵심 구역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심수(深水) 컨테이너 항만 중 하나다. 이 항만의 등장은 상하이항이 세계 1위로 도약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전략이 도시를 움직이다
양산항은 단지 항만이 아니다. 상하이항을 구성하는 여러 구역 중 가장 깊고 넓은 심수항으로, 세계 해운 네트워크를 겨냥한 국가 전략형 인프라의 결정체다.
2005년 개항한 이 항만은 상하이 본토에서 약 32㎞ 떨어진 동중국해의 인공섬에 조성되었으며, 총 50개 선석 규모로 순차적으로 개발됐다. 수심 15~16m 이상을 확보해 8000TEU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상시 접안할 수 있다. 여기에 무인 자동화 터미널, 5G 기반 운영 시스템, AI 기반 예측 기술이 결합되며, 상하이항의 스마트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양산항은 독립적인 항만으로 봐서는 안된다. 상하이항 전체가 세계 1위 컨테이너 물동량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 인프라로 해석해야 한다. 다시말해 단순한 크기가 아닌, 도시 전반의 통합된 항만 전략이 세계 1위 항만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항만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一带一路)' 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상하이항에서 출발한 컨테이너선은 동남아, 남아시아,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연결되며,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과 해양 외교 전략의 물리적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2010년, 상하이항은 싱가포르를 제치고 세계 1위 컨테이너 항만으로 등극했고, 2023년 기준으로 연간 4900만TEU 이상을 처리하며 그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바다를 설계한 도시, 그리고 부산이라는 교차점
상하이항의 진화는 한국의 부산항과도 깊은 교차점을 만든다. 부산항 역시 동북아시아 환적 물동량의 중심지이며, 컨테이너 처리 기준으로 세계 7위권을 유지하는 대표 항만이다.
두 항만 모두 스마트화, 자동화, 친환경화라는 현대 항만의 3대 과제를 실현하고 있는 글로벌 선도 사례다.
부산항은 상하이항과 로테르담항의 기술 혁신을 벤치마킹하며 ‘한국형 스마트 포트’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두 항만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다.
글로벌 해운동맹, 공동 노선 운영, 항만 기술 공유, 그리고 해상물류 거버넌스에 이르기까지 공급망의 양대 축으로서 상호 작용하고 있다.
하나의 바닷길 위에서, 두 도시는 서로를 밀고 끌어올리고 있다.
2005년, 2015년, 2025년.
세 번의 상하이 방문에서 나는 늘 조금 늦게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그 도시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상하이항은 조용히 말한다.
“바다는 더 이상 국경이 아니다. 상하이항은 그것을 증명했다”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labmoneta6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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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엘리 교수는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이자, 국립외교원/외교부 외래교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사 랩 모네타(Lab MoNETA) 대표 컨설턴트다. 방송 및 언론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그는 삼표그룹 홍보팀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TV, 내외경제TV, 아리랑TV 등에서 앵커 및 콘텐츠 기획자로 활약했다.
현재는 도시 기반의 경제 커뮤니케이션 전략, 스타트업 국제 진출 컨설팅, 글로벌 IR 피칭 등을 지원하며,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실전형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