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타수] 단통법 폐지했더니 '셀프' 시장 안정화라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 폐지로 이동통신사들의 마케팅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던 정부와 업계의 장밋빛 전망이 무색해지고 있다. 경쟁을 통한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애초 취지와는 정반대로, 일부 이통사가 '시장 안정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지난 주말(2~3일) A 이통사가 발표한 지원금 축소 조치는 그야말로 정책 기조에 정반대 행보였다. 그것도 이틀간 수차례에 걸쳐 일선 판매점에 시장 안정화 공지를 냈다.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통사 간 마케팅 경쟁을 활성화해 소비자 혜택을 늘리겠다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정작 경쟁의 주체인 이통사가 스스로 '시장 안정화'를 외치며 마케팅비를 줄인다니, 이보다 모순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 A 이통사 측은 과도한 마케팅 경쟁으로 인한 시장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궤변에 가깝다.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는 더 나은 서비스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경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이는 시장 안정화가 아니라 시장 담합의 신호탄일 뿐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타이밍이다. 단통법 폐지로 소비자들이 통신비 인하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지원금을 줄여 소비자 부담을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정부 정책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과점체제 하에서 소비자 선택권이 극도로 제한돼 왔다. 높은 통신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통사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가 요금제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단말기 구매비를 낮추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한 것도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A 이통사의 이번 조치를 보면, 이들이 과연 소비자를 위한 경쟁을 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경쟁은 커녕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인다. '시장 안정화'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싸여 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마진을 보호하려는 계산일 뿐이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이통사들이 담합 행위를 하지 않도록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 업체가 지원금을 줄이면 다른 업체들도 '줄 세우기'식으로 따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단통법 폐지의 취지를 살리려면 이통사들의 이런 꼼수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진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