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엘리의 도시는 말한다]㊳상파울루-브라질 경제의 심장, 기업 집적지

현대의 도시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경제 전략의 최전선이다. 세계 각국은 도시 브랜드를 기반으로 투자 유치, 글로벌 인재 확보,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름’은 곧 ‘전략’이며, 도시 간 경쟁력의 상징적 신호로 기능한다. 본 연재는 글로벌 도시의 지명 유래를 통해 경제, 역사, 문화, 외교의 맥락을 통합적으로 조명하고, 독자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름에 이미 새겨진 도시의 의지
상파울루(São Paulo)는 포르투갈어로 '성 바오로(바울)'를 의미한다.
상파울루라는 도시의 이름은 단순한 종교적 헌사가 아니다. 1554년 1월 25일 예수회 선교사들이 피라치닝가 고원에 대학을 세운 날이 바로 바울의 개종 축일이었고, 그날의 이름이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시작은 원주민 전도를 위한 선교 기지였고, 그 이름은 ‘믿음을 전파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상파울루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종교적 기원이 오늘날의 도시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상파울루의 도시 모토는 라틴어로 이렇게 선언한다.
Non ducor, duco. (나는 이끌리지 않는다. 내가 이끈다)
남반구 최대 도시이자 라틴아메리카 최대 경제 도시인 상파울루는 19세기 커피 붐을 계기로 산투스 항구를 통해 세계 시장과 연결되었고, 20세기 산업화와 대규모 이민 유입을 통해 기업과 자본이 급속히 집적되었다.
브라질 GDP의 약 10%를 차지하는 상파울루는, 더 이상 ‘브라질의 도시’가 아니라 브라질의 방향을 결정하는 도시가 되었다.
도시 인구는 1224만명, 광역권은 2100만명을 넘는다. 밀도는 높고, 속도는 빠르며, 경쟁은 거칠다. 하지만 이 도시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 자본, 기업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도시를 끌고 간다.
상파울루는 시작부터 이렇게 말해왔다.
“우리는 따라가지 않는다.”
커피에서 금융으로, 권력이 이동한 거리
상파울루의 경제사는 커피의 역사로 시작된다. 19세기 말 커피 붐은 상파울루를 단숨에 브라질 경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커피 귀족들이 축적한 자본은 철도와 항만, 금융으로 재투자되었고, 그 상징적 공간이 바로 파울리스타 대로(Avenida Paulista)다. 1891년 개통 당시, 이 거리는 커피 재벌들의 호화 저택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저택은 사라지고, 은행과 기업 본사, 증권거래소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도시는 스스로 용도를 바꿨다. 사적 부의 과시 공간에서 공적 자본의 심장부로 말이다.
오늘날 파울리스타 대로는 라틴아메리카 금융의 축이다. B3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은행, 보험, 컨설팅, 글로벌 기업 본사가 밀집해 있다.
상파울루는 ‘브라질의 시카고’라 불릴 만큼 기업 집적도가 높고, 다국적 기업 본사의 60% 이상이 이곳에 위치한다. 이 구조 속에서 등장한 기업들이 도시의 성격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브라데스코(Bradesco)는 전국적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대중 금융의 인프라를 만들었고, 이타우 우니방코(Itáu Unibanco)는 합병을 통해 남미 최대 자산 규모 은행으로 성장하며 금융 권력의 집중을 상징했다.
이 은행들은 단순히 돈을 관리하지 않는다. 기업의 생애 주기, 개인의 삶의 흐름, 산업의 방향을 함께 설계한다. 상파울루가 ‘금융 도시’라는 말은, 이곳이 결정을 생산하는 도시라는 뜻에 가깝다.
산업이 도시를 닮을 때, 도시는 시스템이 된다
상파울루의 또 다른 얼굴은 제조와 기술이다. 세계 3대 항공기 제조사 중 하나인 엠브라에르(Embraer)는 상파울루 인근 상호세두스캄푸스를 중심으로 항공 산업 생태계를 형성했는데, 브라질 항공 산업의 70% 이상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연구·생산·금융이 하나의 권역에서 순환한다.
엠브라에르의 성장 과정은 상파울루 도시 구조와 닮아 있다. 국영 기업에서 출발해 민영화, 상장, 글로벌 시장 진출에 이르기까지 국가 → 시장 → 세계로 이동하는 이 경로는 상파울루가 선택해온 발전 방식 그 자체다.
여기에 네슬레, 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브라질 본부를 두며, 상파울루는 더 이상 특정 산업에 의존하지 않는 다층적 경제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하나의 공통된 원칙이 있다. 산업은 보호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 그래서 상파울루는 편안하지 않지만, 강하다.
도시 브랜딩 관점에서 상파울루는 묻는다.
“도시는 누가 움직이는가?”
이곳의 답은 분명하다. 정책이 아니라 시장이며, 이미지가 아니라 구조이고, 슬로건이 아니라 결정의 축적이다.
상파울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끌리지 않는다. 내가 이끈다.”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labmoneta6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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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엘리 교수는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이자, 국립외교원/외교부 외래교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사 랩 모네타(Lab MoNETA) 대표 컨설턴트다. 방송 및 언론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그는 삼표그룹 홍보팀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TV, 내외경제TV, 아리랑TV 등에서 앵커 및 콘텐츠 기획자로 활약했다.
현재는 도시 기반의 경제 커뮤니케이션 전략, 스타트업 국제 진출 컨설팅, 글로벌 IR 피칭 등을 지원하며,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실전형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