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의 투자 레터]⑰삼각파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작은 것들이 거대한 것을 뒤집을 때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하와이 시각 오전 7시 33분. 미 육군 참모총장이 보낸 긴급 경고 전보가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일본 전투기 183대가 진주만 상공 320㎞까지 접근한 그 시각, 공격 개시 27분 전이었다. 그러나 전보는 웨스턴유니온의 배달 소년에게 넘겨졌고,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포트 셰프터를 향해 출발했다. 공습이 시작되자 소년은 길가 도랑에 몸을 숨겼다. 전보가 전달된 것은 오후 2시 58분. 공격이 끝나고 7시간 뒤였다. 2403명이 사망하고 전함 3척이 침몰한 후였다.
1980년 9월, 영국 화물선 MV 더비셔(Derbyshire)호가 태평양에서 사라졌다. 전장 294미터. 서울 남산타워 높이와 맞먹고, 63빌딩을 옆으로 뉘여도 모자라는 크기다. 철광석 15만7000톤을 싣고 일본을 향하던 선령 4년의 이 최신예 선박은 태풍 오키드를 만나 조난 신호 한 번 없이 수심 4200미터 해저로 가라앉았다. 14년 뒤 발견된 잔해가 밝힌 원인은 의외였다. 태풍이 선수 부근의 아주 작은 환기구 덮개를 떼어냈고, 이틀에 걸쳐 그 틈으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선수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결정적 파도가 왔을 때 첫 번째 화물창 해치가 꺾이며 수백톤의 물이 쏟아졌고, 두 번째·세 번째 해치가 연쇄 붕괴했다. 이 거대한 배가 채 1분 만에 사라졌다. 44명 전원 사망.
역사의 대재앙은 거대한 원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전거 소년의 느린 페달, 환기구 덮개 하나. 사소하고 우연한 것들이 겹칠 때,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만들어진다.
이는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1942년에는 미군 1만1000명을 수송하던 6만톤급 여객선 퀸 매리(Queen Mary)호가 대서양에서 높이 28미터의 괴물 파도에 측면을 맞아 52도까지 기울어졌다. 3도만 더 기울었으면 전복이었다.
지난 20년간 200미터 이상 초대형 선박 200척 이상이 침몰했다. 배를 뒤집는 것은 파도 하나의 크기가 아니라 타이밍의 중첩이다. 첫 번째 파도가 배를 기울이고, 복원되기 전에 두 번째가 덮치면 전복은 피할 수 없다. 해양학자들은 이것을 '파도 열차(wave train)'라 부른다. 파도가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같은 타이밍에 모여들 때 삼각파도가 된다. 2026년 3월,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 파도 열차에 가까이 있다.
첫 번째 파도: 전쟁과 에너지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했다. 이란은 보복으로 걸프 산유 시설과 미군 기지를 타격했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전 세계 석유의 20%, 하루 2000만배럴이 통과하는 동맥이 막힌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역사상 최대 에너지 안보 위기'로 규정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란이 호르무즈에 이어 아랍어로 '눈물의 문'이라 불리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수에즈 운하의 관문이자 전 세계 해상 원유의 10% 이상이 통과하는 또 하나의 병목—까지 봉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두 개의 동맥이 동시에 위협받는 이중 초크포인트 상황이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77달러에서 3월 중순 120달러 근처까지 급등했다.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는 해협 4주 완전 봉쇄 시 15달러 추가 상승을, 옥스포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는 140달러가 2개월 지속될 경우 글로벌 침체 진입 가능성을 분석했다. S&P 500은 3월 3~20일 사이 약 4.5% 하락했고, 나스닥은 더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이것이 첫 번째 파도다: 전쟁 → 유가 → 인플레이션 → 금리 동결 → 성장주 자금 이탈.
그러나 이 파도의 본질을 정확히 봐야 한다. 이번 전쟁은 트럼프 행정부의 갑작스러운 이란 공습에서 촉발된 외생적 충격이다. 시장은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어떻게 끝날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충격은 기존 강세장을 이끌어온 근본 동력—AI 기술 혁신, 기업 실적 성장, 글로벌 디지털 전환—과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강세장의 엔진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 항로 위에 예기치 못한 폭풍이 들이닥친 것이다.
두 번째 파도: 보이지 않는 균열
Derbyshire호를 침몰시킨 것은 태풍 자체가 아니라 작은 환기구로 스며든 물이었다. 미국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이 지금 이 상태에 있다. 2008년 이후 은행 규제의 틈새에서 급성장한 이 시장은 약 2조~3조달러 규모다.
진짜 공포는 손실의 크기가 아니다. 시장은 손실 자체보다, 누가 얼마나 쥐고 있는지 모를 때 더 크게 흔들린다. 2008년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이 부실한 서브프라임의 존재가 아니라, 그 부실이 어디에 얼마나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금 사모신용 시장은 JP 모건(JP Morgan)의 다이먼 CEO가 '바퀴벌레는 하나만 있는 법이 없다'고 경고했듯 동일한 불투명성을 안고 있다.
해치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2025년 말 트라이컬러·퍼스트 브랜즈(Tricolor·First Brands) 파산, 2026년 2월 영국 MFS 부도, 불루 아울(Blue Owl) 주가 40% 급락 및 환매 제한, 블랙스톤 BCRED·아레스·아폴로(Blackstone BCRED·Ares·Apollo)의 연이은 환매 한도 조치.
사모 대출의 약 26%가 SaaS(Softward as a Service) 기업에 집중되어 있는데, 에이전틱 AI의 부상이 SaaS 모델 자체를 위협하면서 디폴트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는 디폴트율 최대 8%까지의 상승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모신용 위기의 직접적 전염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실질적 위협은 자기강화 루프 즉 유동성 경색을 통한 간접 파급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자는 위험을 줄이고, 위험을 줄이는 행동은 유동성을 축소시키며, 유동성 축소는 가격 하락을 부르고, 가격 하락은 다시 신용경색을 강화한다.
파도가 모이는 곳
1933년 미 해군 수송선 래마포(Ramapo)호는 북태평양에서 높이 34미터의 괴물 파도를 만났다. 이 파도 하나의 잠재 에너지는 세계 최대 수력발전 댐 출력에 필적했다. 파도가 한 차례였기에 배는 살아남았다. 두 번째가 왔다면 수송선은 태평양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첫 번째 파도(유가 충격)가 시장을 기울였고, 그 상태에서 두 번째 파도(사모신용 유동성 경색)가 AI 투자를 위축시키면 레버리지로 부풀어 오른 자산시장이 급격한 디레버리징에 직면한다. 이것은 1973년 석유위기(에너지 공급 충격)와 2008년 금융위기(불투명한 익스포저)의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다. Derbyshire호에 비유하자면, 태풍이 환기구 덮개를 벗긴 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이 스며들고 있으며, 결정적 파도가 해치를 부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파도 열차가 특히 위험한 해역이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 중 6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 GDP 대비 원유 순수입액 비율은 4.6%로, 일본(1.8%)이나 중국(1.7%)을 압도하는 에너지 다소비 구조다.
이란 전쟁 발발 후 9 영업일 간 주요국 통화 약세폭에서 한국 원화가 지수 104.1로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3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향후경기전망 CSI는 전월 대비 13포인트 폭락한 89,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0%로 반등했으며, 석유류 물가 우려 응답은 전월 대비 52.7%포인트 상승했다. 파도는 이미 갑판을 넘고 있다.
그런데 진주만의 전보가 그랬듯, 경고의 도착 속도와 의사결정 속도 사이에는 치명적 간극이 존재한다. 현재 미국은 사모신용 리스크를 정책 우선순위에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압력하에서 금리 인하도 불가능하다.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 유예 발표 15분 전에 5억8000만달러 규모의 유가 하락 베팅이 실행된 정황까지 포착되었다. 한 줄의 발언이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환경에서, 파도는 모이고 있으나 전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무게중심을 낮추되, 바다에 머물 것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나 공포가 아니라 연결의 감각이다. 전쟁을 에너지로, 에너지를 물가로, 물가를 금리로, 금리를 성장주의 자금조달 비용으로, 다시 사모신용과 AI 유동성으로 연결해서 보는 시각. 이것이 삼각파도의 윤곽을 읽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연결을 읽되, 한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위기의 기폭제인 이란 전쟁은 트럼프 행정부의 갑작스러운 결정에서 시작된 외생적 충격이다. 강세장의 근본 동력—AI 기술 혁신, 반도체 수요 확대, 디지털 전환—이 훼손된 것이 아니다. 폭풍은 항로 위에 들이닥쳤지만, 엔진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초단기채와 같은 현금성 비중을 확대하여 완충력을 확보하되, 시장에서 발을 빼지는 않아야 한다. 특정 섹터나 자산군에 대한 배팅을 확대하는 극단적 익스포저를 추가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 채 파도가 이어지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집채만 한 파도가 아무리 몰아쳐도 산처럼 커다란 배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파도가 이어지고 연결되면 드물고 예상 밖의 일은 일어난다. 진주만의 전보가 7시간 늦게 도착해 수천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키고, 환기구 덮개 하나가 거대한 화물선을 삼키듯 작고 우연한 것들의 중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만든다. 그러나 그 바다 위에서 항해를 계속한 배들 만이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무게중심을 낮추되, 바다에 머물 것. 지금은 그런 시간이다.
※본 자료는 투자 권유가 아닌 시장 분석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6년 3월 26일 기준 공개 정보에 기반한 가설적 분석이며, 실제 시장 상황은 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민우 아테나자산관리자문 대표 athena@athenaa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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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대표는 대기업 기획부문 출신이다. 18년 간 1300명이 넘는 고객에 대한 지속적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풍부한 현장 경험과 연구 실적을 쌓았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인사이트와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며, 경제동향 기고를 비롯해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MBA, 증권투자상담사, 펀드투자상담, 종합자산관리사, 종합재무설계사, 심리상담사 자격이 있으며, 매일경제TV 월가월부, OBS 돈잇슈, EBS 뉴스, NBN내외경제TV, 부동산경제TV 및 경제관련 유튜브 등에 출연했다.
이 대표의 전문 분야는 매크로 이슈 관련 산업 섹터 포트폴리오 조정과 섹터내 선도 종목 교체를 통한 시장 초과수익 달성이다. 현재 경영 중인 자산관리 자문사의 파트너들과 법률·세무·회계·심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자산 관리 측면에서 발생하는 리스크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