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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엘리의 도시는 말한다]㊴모스크바 – 에너지 자본과 지정학이 만든 도시

석양이 지는 모스크바 모습 / 사진 픽사베이
석양이 지는 모스크바 모습 / 사진 픽사베이

현대의 도시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경제 전략의 최전선이다. 세계 각국은 도시 브랜드를 기반으로 투자 유치, 글로벌 인재 확보,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름’은 곧 ‘전략’이며, 도시 간 경쟁력의 상징적 신호로 기능한다. 본 연재는 글로벌 도시의 지명 유래를 통해 경제, 역사, 문화, 외교의 맥락을 통합적으로 조명하고, 독자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이 도시는 사람보다 ‘중심’을 먼저 보게 만든다

모스크바에 처음 서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끌린다. 하늘은 낮고, 색은 절제돼 있으며, 건물들은 유난히 말수가 적다. 이 도시는 반갑게 손을 흔들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왜 왔나?”

도시의 구조부터가 그렇다. 방사형으로 뻗은 도로와, 그것을 여러 겹으로 감싸는 원형 순환도로. 길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중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확장보다는 집중, 분산보다는 통제, 모스크바는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다.

석양이 지는 모스크바 모습 / 사진 픽사베이 석양이 지는 모스크바 모습 / 사진 픽사베이

이 도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비유는 ‘시장’이 아니라 ‘본사’다. 본사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무겁다. 사람이 모이기보다 결정이 모이고, 물건이 오가기보다 보고서가 오간다. 모스크바는 러시아라는 거대한 조직의 결정이 내려지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거리의 크기, 광장의 넓이, 건물의 높이까지 모두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스케일로 느껴진다. 도시가 사람 위에 있고, 중심이 도시 위에 있다. 모스크바는 그렇게 ‘중심을 향해 수렴하는 도시’로 존재해 왔다.

에너지는 이 도시에서 ‘상품’이 아니라 ‘언어’다

러시아를 떠올리면 우리는 쉽게 연결하지 못한다. 미국은 기업으로, 유럽은 문화로, 중국은 제조로 이해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 어떤 범주에도 깔끔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이 차이는 에너지에서 시작된다. 가즈프롬, 로스네프트, 루크오일 등 이름은 익숙하지만 소비한 기억은 없다. 왜냐하면 이 기업들은 시장을 설득하기보다 국가 전략을 실행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에너지는 파는 물건이 아니라 쥐고 있는 카드다. 가스관 하나는 계약이면서 동시에 협상이고, 석유는 매출이면서 압박 수단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기업은 주인공이 아니라 도구에 가깝다.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자주 혼란을 겪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 분석은 정확한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에서는 시장 논리가 항상 1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는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는다. 시베리아가 생산하고, 북극권이 캐낸다. 모스크바는 그 흐름을 관리하고, 조정하고, 정치화 한다. 그래서 이 도시는 에너지 자본과 지정학이 겹쳐지는 지점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교차점이 도시의 성격을 결정해 온 것이다.

그래서 이 도시는, 직접 가봐야 이해된다

모스크바는 친절한 도시가 아니다. 가볍게 소비되는 도시도 아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직접 걸어볼 필요가 있는 도시다.

모스크바 붉은광장 모습. 저 멀리 크렘린 궁이 보인다. / 사진 픽사베이 모스크바 붉은광장 모습. 저 멀리 크렘린 궁이 보인다. / 사진 픽사베이

크렘린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간, 과하게 넓은 광장, 사람보다 국가가 먼저 느껴지는 거리들. 이 도시를 걷는다는 건 러시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몸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여기서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 관찰에 가깝다. 왜 이 도로는 이렇게 넓은지, 왜 이 건물은 이렇게 닫혀 있는지, 왜 이 도시는 쉽게 미소 짓지 않는지, 그 질문들에 답이 생기기 시작하면 뉴스가 다르게 보이고, 에너지 가격이 다르게 읽힌다.

모스크바는 시장 중심 세계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른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도시다. 자본이 권력과 결합할 때 도시는 어떤 얼굴을 갖게 되는지, 그 결과가 공간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에너지 자본과 지정학이 만든 도시, 모스크바. 이 도시는 말없이 말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질 때, 비로소 모스크바는 여행지가 된다.

장엘리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labmoneta618@gmail.com 

※ 외부 기고는 콕스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엘리 교수는 동명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이자, 국립외교원/외교부  외래교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사 랩 모네타(Lab MoNETA) 대표 컨설턴트다. 방송 및 언론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그는 삼표그룹 홍보팀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TV, 내외경제TV, 아리랑TV 등에서 앵커 및 콘텐츠 기획자로 활약했다.

현재는 도시 기반의 경제 커뮤니케이션 전략, 스타트업 국제 진출 컨설팅, 글로벌 IR 피칭 등을 지원하며,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실전형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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