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평론 / Politics

저 왕수박 아니예요.

왕수박 아니예요
정청래가 "난 왕수박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 아찔한 고백이다.
1956년 8월 3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최창익, 박창옥 등이 김일성의 개인 숭배를 비판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떠올랐다. 김일성이 정치적 위기를 맞아 반종파투쟁을 전개하며 반대파를 '종파'라는 프레임으로 축출했던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마르크스의 통찰이 이토록 생생하게 재현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봉하마을까지 찾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했다.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데 그 눈물의 방향이 애매하다. 당 지도부를 향한 것인지, 민주당 지지자들, 이른바 '개딸들'을 향한 것인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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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법사위원장이었던 자가 수박을 깨 퍼먹는 유치 찬란한 퍼포먼스를 부끄럼 없이 SNS에 올리던 바로 그 정청래. 타인을 조롱하던 그 언어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왕'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체 칼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눈물까지 곁들여 자신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아이러니의 완벽한 표본이다. 하지만 동정심은커녕 민망함만 든다. 유리창보다 투명한 정치적 계산이 너무 뻔히 보이니까.
정치인의 눈물만큼 값싼 게 또 있을까. 특히 자신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우는 눈물만큼 공허한 스펙터클이 또 있을까.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이 거울 앞에서 연기 연습을 하는 장면처럼, 연출된 감정은 언제나 기괴하다.
사실 왕수박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런 질문 자체가 성립하는 정치 현실이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은 전후 복구와 개인숭배 문제를 놓고 김일성에게 도전장을 던진 권력투쟁이었다. 충성도 검증이 일상화된 곳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잠재적 배신자가 된다. 70년 전 평양에서 벌어진 풍경이 2025년 여의도에서 재연되고 있다니. 공산당의 순혈경쟁 DNA가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정청래의 눈물은 진짜였을 수도 있다. 허나 이런 희극같은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연민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그냥 피로감일까.
정치는 원래 연기의 영역이다. 하지만 좋은 연기와 나쁜 연기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는 진실처럼 보이지만, 아마추어의 과장된 몸짓은 민망함만 자아낸다. 정청래의 봉하마을 순례는 후자에 가깝다.
결국 이 모든 해프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언제까지 이런 기본도 안된 저질극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조롱의 언어로 남을 공격하던 자가 같은 언어에 갇혀 변명하는 모습을.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해 충성도 검증을 하는 동안, 정작 검증받아야 할 것은 국민을 향한 그들의 책임감 아닐까.
왕수박이 아니라고? 당신이 조롱하던 그 사람들은 수박이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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