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아들의 계좌번호
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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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18:09

조용히 보내는 법을 모르는 이들
결혼식은 축복의 자리다. 그런데 한국 정치인 자녀의 결혼식만큼은 언제나 축복보다 논란이 먼저 터진다. 축의금 봉투 안에 폭죽이라도 들어있는 양.
대통령 아들 이동호 씨의 결혼식. 비공개로 치른다더니 모바일 청첩장이 SNS를 탔다. 거기에 계좌번호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도박과 음담패설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어놓고, 결혼식마저 조용히 치를 줄 모르는 건가?
계좌번호가 주는 무언의 압박
물론 우연히 청첩장이 유출된 걸 수도 있고 모바일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넣는 일 또한 흔해졌다. 하지만 계좌번호가 정확히 기재된 청첩장을 받으면 누구나 생각한다. "참석여부와는 상관없이 돈은 보내라는 얘기인가?"
대통령 아들의 청첩장에 적힌 계좌번호. 그 숫자들이 권력의 자력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축의금이 자발적인지 의무적인지 헷갈리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그 계좌번호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얼마를 보내야 체면이 깎이지 않을까?"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 권력 생태계의 민낯이다.
두꺼운 면피, 얇아지는 신뢰
"개인적 행사"라며 선을 긋지만, 국민들은 묻는다. 왜 개인적 행사가 매번 공적 논란이 되는지, 왜 계좌번호가 논쟁의 중심에 서야 하는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자녀 셋을 모두 '도둑결혼'시켜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박순자 전 의원의 딸 결혼식에는 의원 30명이 몰려들고 축의금 줄이 50미터를 넘었다. 결혼식 하나에도 권력자의 품격이 드러난다.
당연히 권력자도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더 큰 투명성을 요구받는 자리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 균형점을 찾지 못할 때, 결혼식 같은 개인적 행사마저 정치적 사건이 된다.
같은 날, 다른 품격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김문수 후보는 형님의 부고를 알렸다. "개인 사정으로" 회의 불참이라는 간단한 연락만 남기고, 혹여 사람들이 몰려올까 봐 빈소를 제3의 장소로 옮겼다.
같은 날 벌어진 두 사건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한쪽에서는 비공개 결혼식이 공개 논란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진짜 개인사를 조용히 처리한다. 어느 쪽이 진정한 '개인적 행사'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품격의 가격표
결국 문제는 품격이다. 조용히, 품위 있게, 투명하게 치르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국민들은 묻는다. "굳이 대통령의 아들이 축의금을 받는 게 맞는 걸까?", "정치인의 얼굴은 왜 이렇게 두꺼운가?" 그 두께만큼 신뢰는 얇아진다. 그리고 그 얇아진 신뢰 위에 또 다른 논란이 쌓인다. 마치 부실한 지반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