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평론 /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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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대출채권 담보 긴급여신 도입

한국은행 본부한국은행 본부 [연합뉴스]한국은행이 내년 1월부터 은행이 보유한 대출채권을 담보로 긴급 자금을 빌려주기로 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의결했다. 쉽게 말해, 은행이 돈이 급할 때 국공채 같은 우량 자산이 없으면 기업에 대출해 준 '장부'라도 들고 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한은이 돈을 찍어서 주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원칙을 벗어난 조치다. 보통 중앙은행은 현금화가 쉬운 국채나 통안채만 담보로 받는다. 회수가 불확실한 대출채권까지 받아주겠다는 건, 그만큼 금융 시장의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은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같은 초고속 뱅크런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야 한다. 경제가 안정적이고 금융 시스템이 건강하다면 굳이 이런 '비상용 파이프'를 지금 시점에 뚫을 이유는 없다. 소방서가 갑자기 소방차를 증차하고 비상 대기조를 늘린다면, 어딘가에서 타는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권, 특히 민주당 지지층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경제가 견실하다", "수출이 잘된다"는 식의 낙관론만 흘린다. 경제 위기론을 제기하면 '가짜 뉴스' 취급을 하거나, 정부를 흔들려는 공작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은의 이번 조치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경제가 좋은데 왜 중앙은행은 시중 은행들이 망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최후의 안전판을 만드는가. 은행이 보유한 국채를 다 팔아치우고도 현금이 모자라는 상황, 즉 '자금 고갈' 시나리오를 한은은 실질적인 위협으로 보고 대비책을 세웠다.
이번 제도는 사실상 은행이 부실해졌을 때를 대비한 ‘중환자실’ 예약이다. 건강한 사람은 중환자실을 예약하지 않는다. 한은의 엘리트 관료들은 데이터를 보고 조용히 움직이는데, 정치인과 지지자들만 데이터를 무시하고 구호를 외친다.
미국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도 이 제도를 쓴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맞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나 최근의 은행 파산 사태를 겪으며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도입했다. 우리는 아직 표면화된 위기가 없는데도 도입한다. 예방 주사라기보다는, 닥쳐올 충격에 대비해 미리 붕대를 감는 것에 가깝다.
한은이 담보로 받겠다는 건 'BBB- 등급' 이상의 기업 대출이다. 아주 우량하지 않아도 받아주겠다는 뜻이다. 그만큼 은행의 유동성 확보가 절박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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