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평론 /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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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신 싸워주는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국회 본회의장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새해 벽두부터 한미 관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국무부가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예정됐던 한미 FTA 회의는 돌연 취소됐다. 미국이 타국의 국내법에 이토록 즉각적이고 강경하게 반응하는 건 이례적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 법이 겉으로는 ‘가짜 뉴스 근절’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기업에 “정부 마음에 안 드는 정보를 알아서 지우라”고 강요하는 검열법이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선 자국 기업(구글, 메타)에 대한 부당한 규제이자 비관세 장벽이다.
정부는 몰랐을까. 알았을 것이다. EU의 사례를 통해 빅테크 규제가 통상 마찰로 이어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밀어붙였다. 이유는 하나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비판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게 정권 유지에 더 급했기 때문이다. ‘방탄’을 위해 국익을 땔감으로 쓴 셈이다.
하지만 통상 마찰보다 더 참담한 것은, 이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풍경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를 걱정하고 항의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한국의 야당도, 시민단체도, 지식인도 아니다. 바로 미국 정부와 외신들이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검열이 우려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의 지식인 사회와 언론계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 외신 기자들에게 몰래 쪽지를 건네며 진실을 알리려 했던 그 결기는 다 어디로 갔나. ‘가짜 뉴스’라는 모호한 칼날이 비판 언론의 목을 겨누고 있는데, 강단에 선 교수들과 펜을 든 기자들은 남의 일 보듯 한다.
07aeac01dc3d2c5486128f4959038c9ae663e4fc.jpg사진 : 유튜브 썸네일 한국언론의 후퇴를 여실히 보여주는 MBC의 환율이 블러처리된 뉴스 썸네일이유는 둘 중 하나다.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비겁해졌거나, 아니면 그들 스스로가 진영 논리에 갇혀 “우리 편이 하는 검열은 착한 검열”이라고 믿고 있거나. 어느 쪽이든 지성인의 직무 유기다.
미국이 반발하는 건 숭고한 민주주의 정신 때문만이 아니다. 자국 기업의 이익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항의가 대한민국 국민의 입을 지켜주리라는 기대를 해야하는 현실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내 나라의 자유가 위협받는데, 그 부당함을 외국 정부의 입을 빌려 확인해야 하는 현실. 이것은 외교적 갈등을 넘어선 ‘국가적 수치’다.
정부는 통상 마찰을 우려하는 척하며 뒤로는 미국 눈치를 볼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침묵하는 다수에게는 여전히 오만할 것이다. 지식인들과 언론이 입을 다물면, 그 빈자리는 외세의 간섭이나 독재의 공포로 채워진다. 미국이 대신 싸워주는 언론 자유. 2026년 대한민국 지성사의 가장 뼈아픈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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