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가는 '평론'하는 곳이 아니라 '조율'하는 곳이다
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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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0 04:19
이재명 대통령, 수석보좌관회의 발언 (연합뉴스) 어제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생산 현장 투입을 막아선 사태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는 기술의 파도를 "거대한 수레"에 비유하며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까지 소환해 "어차피 올 세상이니 적응하라"고 훈계했다.얼핏 들으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의 통찰처럼 들린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미래학자가 강연장에서 할 법한 말이지, 국정 최고 책임자가 청와대에서 할 말은 아니다.
대통령의 이 발언에는 위험한 세계관이 깔려 있다.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질주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취급하고, 국가는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피해라, 젖는다"고 경고방송이나 하는 방관자로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대통령의 발언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장 난감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는 심리학의 '도구의 법칙'처럼, 의제가 민생이든, AI시대의 도래든, 로봇이든, 대통령이 항상 내놓는 결론은 기승전-'기본사회', 즉 기본소득이라는 '돈 풀기'라는 단 하나의 방법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그 '원툴(One-Tool)' 전략이 그를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려놓았으니, 그 만능열쇠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이 서 있는 자리는 돈 나눠주는 자선사업가의 자리가 아니다. 인류사적 전환기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서로 다른 욕망들을 조율해야 하는 고독한 '중재자'의 자리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난제는 복잡하다. 기업의 본성인 '탐욕'이 노동자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막아야 하지만, 동시에 기업의 '경쟁력'을 꺾어서도 안 된다. 국민들조차 등을 돌리게 만든 일부 강성 노조의 "일단 눕고 보자"는 낡은 습관을 고쳐야 하지만, 동시에 실업의 공포에 떠는 선량한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망도 짜야 한다.
로봇세 도입, 재교육 시스템, 자동화의 속도 조절 등 노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디테일이 산더미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해법은 어떤가.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안 같은 정책들을 보라. 겉으로는 노동자를 위한 '방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업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과 같다.
"사장님, 인간은 파업도 하고, 앞으론 하청에 하청까지 상대하려면 법도 복잡하니, 골치 아프지 않게 빨리 로봇으로 갈아타시죠. 아니면 해외로 공장 옮기시는 건 어때요?"
역설적이게도 '친노동'을 표방한 정책들이 기업으로 하여금 '무인화(無人化)' 버튼을 더 빨리, 더 과감하게 누르도록 등을 떠밀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행정부를 이렇게 평가해서 미안하지만, 팩트는 팩트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인류사적 위기의 코앞에 서 있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은 정권은 19세기 운동권의 논리와 20세기 포퓰리즘의 해법으로 21세기의 파도를 넘으려 한다. 중요한 전환기에 등장한 정권치고는, 참 안타까울만큼 시대착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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