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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판사, 신의 자리에서 ‘의사’라는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다

판사, 신의 자리에서 ‘의사’라는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다
인간의 법정올해로 프로레슬링 데뷔 25주년을 맞이했다. 과천 경마장 데뷔전에서 바디슬램, 클로스라인 몇 번 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로프 안쪽의 세계는 냉혹하다. 0.1초의 판단 착오가 안면을 함몰시키고, 찰나의 주저함이 승패를 가른다. 하지만 그곳에는 최소한의 '현장성'에 대한 존중이 있다. 심판은 링 위의 호흡을 같이하며 땀 냄새 속에서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정교한 전문직역인 의료와 사법이 그 '현장의 호흡'을 거세당한 채 차가운 결과론의 단두대에 올라서고 있다.
162b5b8ffbad410e1e13fb7a3bd2a99d77054cfa.jpg법왜곡죄로 판사가 교도소에 들어가면 먼저 가 있던 의사가 마중 나온다
1.7kg 생존의 무게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나를 '사람'으로 부르길 주저했다. 예정보다 일찍 터져 나온 나는 겨우 1.7kg이었다. 미숙아. 의사는 부모에게 차분하게, 그러나 잔인하게 말했다. "곧 죽을 수도 있으니 출생신고를 하지 마십시오."그것은 의학의 언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선고였다. 살아야할 것과 죽어야할 것들이 꽈베기처럼 꼬여서 흘러갔던 90여일이었을 것이다. 죽을지 살지 모를 아이를 안고 부모는 울다가 쓰러져 잠들기를 반복했다. 나는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서류상 '사람'이 되었다. 50여 년 전, 수원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그 절망적인 확률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때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의사의 고뇌를 사회가 묵인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전제 말이다.
법원이 요구하는 '신의 무결성'지금은 다르다. 재태 기간 26주, 몸무게 900g. 편의점 음료수 두 캔 무게의 생명이 인큐베이터에서 헐떡인다. 동맥관 개존증이 아기의 폐를 짓누를 때, 의사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다. 수술이 빠르면 장기가 터지고, 늦으면 뇌출혈이 아기의 미래를 지워버린다.최근 법원은 이 사투 끝에 발생한 뇌 손상을 두고 의사에게 3억 원이 넘는 배상을 명했다. "더 빨리 수술했어야 했다"는 사후적인 훈수다. 또박또박 정제된 언어로 쓰인 판결문 속의 시간과, 땀과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시간은 결코 같을 수 없다. 판사는 의사에게 '신의 완벽함'을 요구하며, 그 기적에 실패한 인간 의사에게 '신이 되지 못한 죄'를 묻고 있다.이런 세상에서 의사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링 위에서 패배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예 링에 오르지 않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된다.
법왜곡죄, 성역에서 내려온 판사들의 비명그런데 2026년, 대한민국 사법 체계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법왜곡죄'의 공포다. 지금까지 판결이라는 성역 안에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던 판사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판단으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됐다.판사들이 이제 출두고지서를 받는다. 경찰서 민원실에 신분증을 맡기고, 무거운 철문을 지나 수사실로 들어간다.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의 판결이 '의도적 왜곡'이 아니었음을 구차하게 증명해야 한다. 의사가 의료사고 이후 겪었던 그 고통스러운 사법 절차를 이제 판사들이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것이다. 절대자였던 판사가 이제는 이제는 전문가의 양심을 경찰에 의해 단죄받는다. 법원은 의사를 신으로 격상시켜 징벌하더니, 이제는 스스로가 '신이 되지 못한 죄'를 심판받는 피고인석에 앉게 된 셈이다.
누가 마중 나오는가 "법왜곡죄로 판사가 교도소에 들어가면, 의료사고로 먼저 가 있던 의사가 마중 나온다." 
내가 만든 문장이다.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법왜곡죄로 펼쳐질 지옥도는 결코 한번 웃고 끝날 일이 아니다. 의사가 처벌이 두려워 고위험 수술을 포기하듯, 판사들도 이제 고소·고발을 우려해 선례에만 매몰되는 '방어적 판결'의 늪에 빠질 것이다. 건조하고 기계적인 중립 뒤로 숨어버리는 전문가들의 행렬. 그것이 우리가 마주할 현실이자 미래다.전문직을 신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인간의 영역으로 부른 것은 민주주의의 성취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죄인'으로 상정하고 모든 불확실성에 책임을 묻는 것은 야만이다. 1.7kg의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의사의 '기술' 덕분이기도 했지만, 실패를 감수하고 기적에 도전할 수 있었던 '용기' 덕분이기도 했다.900g 미숙아를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수억 원 배상을 명하고, 판결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사를 조사실로 불러내는 사회는 더 이상 기적을 허용하지 않는다.신이 되지 못한 죄를 묻는 사회에서, 스스로 인간의 길을 선택한 전문가들이 남긴 공백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김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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