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 쓰레기봉투의 눈물
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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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5 10:05
쓰레기봉투가 운다. 정부의 무대책에 한 번 울고 사재기에 두 번 운다. (그래픽=가피우스)요즘 마트와 편의점에서 “쓰레기봉투 1인당 1~2장만 구매 가능”이라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다. SNS에는 “종량제 봉투 미리 몇십 장 사재기했다”, “나프타 불안 때문에 미리 확보”라는 인증 글이 쏟아지고 있다. 중동 사태 여파로 비닐 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흔들리면서 국민들 사이에 불안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이 쓰레기봉투 파동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카타르발 비닐대란에 사재기 조짐을 보이는 민심 (사진=스레드 캡쳐) 답은 명확하다. 바로 카타르 LNG 불가항력 사태다. 카타르에너지가 24일(현지시간) 한국을 비롯한 장기 공급국들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공식 선언했다. 이란 미사일이 라스라판 핵심 시설을 타격해 생산 용량 17%가 최대 5년간 마비된 탓이다.
정부는 “카타르 비중은 14%에 불과하고 대체 공급선이 있다”며 “큰 타격 없다”고 반복한다. 하지만 이는 단기 면피용 수사일 뿐이다. 실상은 이재명 정부 9개월 만에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구멍이 터진 것이다. 2022년 유럽 가스 위기 교훈, 수년간 지속된 이란-카타르 긴장, 중동 의존 LNG 공급망의 취약성은 누구나 알던 ‘예측 가능한 위험’이었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이념적 탈탄소 로드맵에만 몰두하며 핵심 방어선을 방기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숫자와 기록으로 증명되는 방기다.
LNG 전략 비축량 9일분을 그대로 둔 ‘최악의 안일’법적으로 의무화된 LNG 비축량은 여전히 9일분이다. 원유는 208일(실질 2개월 미만이라는 지적까지 나오지만)인데 LNG는 이 수준을 2025년 6월 취임 이후 단 하루도 늘리지 않았다. 산업부 자료와 외신 보도(Reuters, S&P Global)에서 반복 확인되듯, 규정상 최소치일 뿐 실질 여력은 더 빈약하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이 비축을 3~6개월분으로 확대하고 공동 구매 풀을 만든 교훈을 이 정부는 철저히 무시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정책 컨트롤타워를 넘기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최우선으로 삼은 결과다. 카타르 FM이 5년 장기화되면 글로벌 현물 시장 가격이 폭등할 텐데, 9일분으로는 산업 현장의 ‘공급 차질 우려’가 현실이 된다. 정부가 이제야 “비축 방출 검토”와 “절약 운동”을 외치는 것은 사후약방문이다. 예측 가능했던 리스크에 대비한 ‘선제 투자’를 방기한 명백한 정책 실패다.
재생에너지 속도전과 LNG 감축 로드맵이 공급 안보를 갉아먹었다이재명 정부는 취임 직후 에너지 정책 주무 부처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하고,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재생에너지 2030년 100GW(현재 30GW대) 확대, 석탄 2040년 제로화, LNG 발전 축소를 명시했다. LNG 수입 자체를 대폭 줄이는 ‘감축 재원’을 재생에너지 투자로 돌리겠다는 계산이었다. LNG를 “과도기 보완재”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확보는 도외시하고 정책은 가스 의존을 낮추는 방향으로만 달렸다.
결과는? 장기 공급계약의 리스크를 헤지할 시간과 예산을 재생에너지·ESS에 쏟아부었다. 카타르산 장기계약(연 610만 톤 규모)에서 불가항력 조항이 발동되면 대체 물량 확보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미국·캐나다 셰일가스나 호주 물량을 더 공격적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지금 정부가 “석탄 발전 재가동”과 “원전 긴급 활용”을 검토하는 것은 스스로의 ‘LNG 브릿지’ 정책이 허구였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탈탄소 이념이 에너지 안보를 앞섰다는 증거다.
장기계약의 취약성을 알면서도 ‘다변화’를 말뿐으로 그친 무책임 2025년 LNG 수입에서 카타르 비중은 14.9%(약 697만 톤)로, 호주(31.4%)·말레이시아(16.1%)에 이어 3위지만 장기계약에서는 여전히 핵심이다. 정부는 “대체 공급선이 있다”고 하지만, 글로벌 LNG 시장에서 17% 공급 차질이 5년간 지속되면 아시아 전체(한국·대만·중국·일본)가 현물 시장으로 몰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후에도 카타르 외 지역(미국 알래스카 프로젝트, 캐나다) 지분 투자나 공동 구매 협정을 ‘검토’ 수준에서 머물렀다. 2025년 12월 전기본 논의에서도 “LNG 감축”이 화두였지, '불가항력' 리스크 방어 조항(대체 공급 의무, 가격 보상, 스왑 계약) 강화나 해외 지분개발 확대는 뒷전이었다. 외신들도 지적하듯, 아시아 LNG 수입국 중 한국이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유는 바로 이 ‘정치적 안일’이다. 이제 산업부가 “대체 물량 확보”를 서두른다고 하지만, 9개월 동안 준비한 게 고작 “현물 구매 전략”이라면 그건 방기이지 대비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전국 에너지 절약 운동”, “차량 5부제”, “추가경정예산”을 외치며 국민과 산업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뻔한 중동 리스크를 알면서도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에 두지 않은 것이다. 2022년 유럽이 겪은 가스 위기를 교과서 삼지 않고,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에만 매몰된 결과가 오늘의 카타르 불가항력 사태다.
비축 9일, 재생 확대 우선, 장기계약 방치. 이게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안보 실체다. 이제라도 늦지 않게 비축법 개정, 공급원 다변화 패키지, 원전·재생 병행 현실화로 방향을 틀지 않으면, 다음 위기는 ‘불가항력’이 아니라 ‘정권의 몰락’으로 기록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