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보다는 낫다"는 대통령의 기이한 정신승리
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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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1 12:35
이재명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드디어 환율을 입에 올렸다. 그동안 1400원대 고환율이 굳어져도 침묵하더니, 이제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진단과 처방이 기이하다.
대통령은 1~2개월 내에 1400원 전후로 안정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근거는 일본이다. 일본 엔화 절하 폭을 적용하면 우리는 1600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에 비하면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정신승리다.
일본과 한국은 지금 같은 병을 앓고 있다. 미국보다 턱없이 낮은 금리, 그리고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무제한으로 푸는 확장 재정 중독이다. 둘 다 통화 가치가 쓰레기가 되어가는 중인데, 대통령은 옆집 환자가 더 위독하니 우리는 건강하다고 주장한다. 1400원 환율은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의 일상화일 뿐이다. 그걸 두고 선방했다고 자위하는 건 국정 최고 책임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대통령은 수출 7000억 달러 달성을 자랑했다. 숫자는 맞다. 하지만 그 내용은 반도체 독주(獨走)다.
산업부 자료를 뜯어보면, 수출 증가분의 대부분은 AI 붐을 탄 반도체(전체의 30%)가 채웠다. 반도체를 걷어내면 대한민국 제조업은 처참하다. 일반기계, 석유화학, 철강, 이차전지 등 주력 10개 품목이 줄줄이 역성장 중이다. 중국에 시장을 뺏기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현장의 비명은 외면한 채, 반도체라는 화장발에 취해 경제가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다리 하나로 위태롭게 서 있는 거인을 튼튼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한국은행의 해명도 궁색하다. 고환율의 원인을 개인과 기업의 해외 투자가 늘어서 달러가 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상은 맞지만 원인 분석이 틀렸다. 왜 나가는가. 한국 시장(국장)을 믿을 수 없고, 한국에서 기업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기업을 악마화하고, 노동 규제는 옥죄어오니, 기업은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개미들은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떠난다. 코리아 엑소더스다. 정책 실패로 자본을 내쫓아놓고, 이제 와서 수급 불균형 탓이라며 남 이야기하듯 한다. 떠나는 돈을 잡으려면 매력적인 시장을 만들어야지, 나가는 문을 탓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대통령의 1400원 공언이다. 시장 가격인 환율을 대통령이 특정 숫자로 못 박는 순간, 관료들은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이미 지난 연말 국민연금을 동원하고 외환보유고를 헐어 환율을 눌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통령이 공언한 이상 정부는 1분기 내에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환율을 찍어 누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숨어 있다. 바로 한미 금리차의 영구적 고착화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의식해 금리는 올리지 못하고 외환보유고만 헐어 쓸 경우, 외국인 자본은 한국을 완벽한 ATM으로 인식하게 된다. 환율은 정부가 세금으로 막아주고 금리는 낮으니, 손해 볼 것 없이 돈을 빼나가기 가장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이 흐름이 가속화되면 결국 채권 시장 발작(Tantrum)이 온다. 국채 금리가 폭등하고 기업의 자금 조달이 막히는 시나리오다. 펀더멘털 개선 없는 인위적 개입은 댐의 구멍을 지폐로 막는 것과 같다.
일본보다 낫다는 말은 위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이 아니라, 과거의 대한민국, 그리고 경쟁국들과 비교해야 한다. 반도체 하나 믿고 나머지는 다 무너지는 나라, 자국민이 자국 화폐를 버리고 떠나는 나라. 이것이 대통령이 말하는 튼튼한 경제의 실체라면,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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