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평론 /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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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담론을 정원오 방어에 사용하는 '민주페미니스트들'


1c83cf2b0cefc8a1009c59dfe675c6db35c298ea.jpg정원오 전 성동구청장. (사진: 연합뉴스)야당이 제기한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의 ‘칸쿤 출장 의혹’에 대해 민주, 진보 계열 여성 인사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 4월 1일 자 한겨레 기사가 인용한 몇몇 인사들의 발언은 페미니즘 담론이 남성정치인의 비리 의혹 방어에 사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95f9e61a1bfd0a8199309caaa19ab7a7a774386.jpg4월 1일 한겨레 기사. (사진: 한겨레)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김재섭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 '여성 정치인/공무원에 대한 낙인’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여성 직원이 출장에 동행했다는 사실만으로 사적 관계를 의심하는 것은 여성의 공적 능력을 부정하는 처사"이며 "성상품화"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은 동행 직원의 ‘성별’ 이 아니라 '행정의 투명성’ 여부다. 김재섭 의원실에서 자료제출을 요청한 공문서(출장 심사 의결서) 에 공무원의 성별을 가려서 보내고, 재차 요청하자 "(성별이) 개인정보" 라는 핑계를 대다가 남성으로 오기된 문서를 보낸 것은 단순 실수를 넘어 '의도적 은폐'의 정황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런 사실에 대한 지적을 '여성 비하'로 치부하는 것은 공적 감시를 성별 프레임으로 덮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성동구가 남성 직원의 성별을 여성으로 잘못 기재했다면 그것 역시 문서 조작으로 지적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b2d5ccfe423224a89c62c4e6f5467cf147f91816.jpg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페이스북. 또한 박 전 위원장은 “여성 공무원은 남성 단체장과 출장을 함께 가면 안 되는 거냐?”고 지적하며 김재섭 의원이 '휴양지', '여직원' 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여성이 여성이라서 '여성'이라고 부른 것, 칸쿤이 자타공인 '세계적인 휴양지'인 것을 어찌하랴. 

10da7d1778c299aa4abf2976be4930b72d5419b2.jpg여성을 여성이라 말하지 못하고, 칸쿤을 휴양지라 부르지 못하니.. (사진: 멕시코 칸쿤, 위키피디아)게다가, 행안부 지침을 비롯 각 지자체의 국외출장 조례에 따르면 출장인원은 ‘업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 으로 구성하고 인원은 ‘공무의 객관성’ 을 담보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관가에서 ‘남녀 2인 출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출장 인원은 소수일 경우 동성직원끼리 배치하거나 3인 이상 다수의 팀을 꾸린다. 이러한 행정계의 '불문율'을 박위원장은 모르는 것일까? 

여성운동가인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도 야당의 의혹제기가 '성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권 소장은 "성별 오기 문제를 가지고 뭔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찾아낸 것 처럼 기자회견까지 한 김재섭 의원은 여성들과 일 안 할 생각? 출장도 다 남자랑만 갈 생각? 이라며 비판했다. 
c461a220fcd32ad9cca3a81a51beaa990d132d34.jpg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페이스북 그러나 야당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출장자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왜, 굳이, 서류상의 성별을 숨기고, 또 바꾸었는가' 다. 구청장의 해외출장에 대한 공문서는 몇 단계의 검토와 심사, 결제를 거친다. 구의회의 감사도 받는다. 그런데, 그런 공문서에서 단 한 명 뿐인 동행자의 성별이 오기된 것은 불의의 ‘시스템 에러’라고 볼 수 없다. 의도를 갖고 조작 되었거나 문서 결제에 관계된 조직 전체가 묵인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성차별’ 을 외치는 권 소장의 논리는 심히 유감스럽다. 여성운동가인 그가, 공적 절차에 대한 검증을 '젠더 갈등’으로 몰아가며 여성문제에 대한 자신의 전문성을 오용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겉으로는 ‘여성의 권익’을 앞세우지만 결국 페미니즘 담론을 남성정치인을 위한 방패로 소모하는 행위일 뿐이다. 
권김 소장은 또한 “직원의 성별이 단순 오기가 아니라 숨기기 위한 의도였다는 식으로 마타도어를 하는데, 숨기려고 했다면 이름과 직급도 다 바꿨겠지”라고 했는데 이것은 “거짓말을 하려면 완벽하게 다 했어야지, 일부만 틀렸으니 실수가 맞다.” 는 수준의 논리다. 

서울시장 경선에 나선 민주당 전현희 의원 또한 정원오 방어에 가세했다. 전 의원은 ‘칸쿤 출장 의혹’이 지방선거를 앞둔 전형적인 '여성 대상화 네거티브’이며 ‘여성성에 대한 모욕’ 이라고 규정했다.
8df9ca32246a96212dbd45c48c2657e7f6d3744d.jpg민주당 전현희 의원. (사진: 연합뉴스)전 의원은 야당의 문제제기를 '네거티브' 라고 일축하지만 지자체장의 해외 출장 과정과 그 동행자 선정 등 절차의 적절성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견제 의무다. 특히 출장지에 칸쿤 등 휴양지가 포함된 상황에서, 단 1인인 동행 직원의 성별이 가려지고, 여성이 남성으로 오기되는 구체적인 '팩트'가 발견되었다면, 이는 합리적 의심의 근거가 된다. 그 의혹의 대상이 단지 ‘여성(최초 제출 문서에는 ‘남성’ 으로 오기)’ 이라고 해서, 공적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여성혐오’ 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모욕’ 이라는 지적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전 의원은 공적인물에 대한 검증을 ‘여성성’ 이라는 감성적 언어로 대응하고 있다. 공문서에 남성으로 표기된 인물이 사실은 여성이었다는 점에 대한 의혹제기를 ‘여성성에 대한 모독’ 으로 받아들이는 전의원은 ‘여성성’의 개념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전 의원은 또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남녀가 대등한 관계에서 업무를 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지적했는데 이는 공직 현실을 모르는(또는 모르는 척 하는) 소리다. 공직 사회에서의 업무관계는 사적인 관계가 아니며 기관장과 직원은 ‘대등한 관계’ 도 아니다. 법학에는 ‘부당함의 외관조차 피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실제 비리가 없었더라도 제3자인 국민이 보기에 의심을 사지 않도록 공정하게 처리하고, 절차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공직자의 의무다. 그런데 이례적이고, 전례가 없으며, 오해를 살 만한 남녀 2인 출장을 강행하고 심지어 공문서의 성별 표기까지 틀린 것을 정원오 후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성차별 철폐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보편적 가치다. 하지만 이를 '공문서 허위 기재’,'부적절한 예산 집행'이라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행정 비리 의혹을 방어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쓰는 순간 페미니즘도, 그 어떤 정의도 의의를 잃을 것이다. 행정 절차의 투명성을 묻는 질문에 ‘여성 공무원과 일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의 억지 프레임. 그것이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모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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