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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 The Korean War

한국전쟁 대표 이미지

한국전쟁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 The Korean War

왕수쩡 王樹增 지음, 나진희, 황선영 옮김, 글항아리

이 책은 "해방전쟁", "장정"과 함께 중국 혁명사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주로 서양인과 반공산진영에서 생산한 글만 봤는데, 참전국 중 하나인 중화인민공화국 사람이 쓴 글은 어떤 관점에서 어떤 내용을 담았을지 무척 궁금했다. 전반적인 내용이야 다 아는 것이고 몇 가지만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수나라 백만 대군이 고구려 침공할때처럼, 이 책도 기본적으로 "뻥"을 깔고 가는 듯 하다. 불과 1개 소대 병력으로 적 중대나 대대 규모 병력을 물리쳤다는 둥, 맨몸으로 얼음 꽁꽁 언 강을 건너 적을 쳐부수었다는 등의 서술이 너무 많아서 가려 봐야 할 것 같다.

2. 예나 지금이나 초장 끗발 개끗발이다. 인민군도 초창기 너무 승승장구하여 자만한 상태로 남진하다 낙동강 전선에서 낭패를 보았고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벌어진 반격작전에서 38선 넘어서면서부터 지나치게 속도를 내다보니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도 무시를 하다 낭패를 보았다. 중국 인민지원군도 (이들 표현에 의하면) 3차 전역까지 이기면서 전진한 것이 자기네들의 잘했다 생각하여 4차 전역부터는 큰 피해를 입었다.

3. 호랑이가 생쥐를 잡을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맥아더는 2차 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거의 종신토록 원수직을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고 극동 지역에서는 거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인민군의 침입으로 자신의 입지를 내세우기 위한 인천상륙작전을 하면서 본인의 입장만 너무 강조하고 주변 정보를 무시하며 적을 얕잡아서 적어도 10만 명 이상의 손해를 입혔다. 

4. 김일성과 이승만. 낙동강 전선 붕괴 이후 인민군 전체가 와해되었지만 김일성은 몇만 안 남은 인민군의 작전권을 팽덕회에 주지 않았다. 그래서 휴전 협정에서도 김일성이 최고 사령관으로 윗줄을 차지했다. 이에 반해 북진 통일해야 한다고 큰소리만 치던 이승만은 맥아더가 왔을때 국군도 함께 지휘해 달라고 떠넘겼는데, 놀란 맥아더가 형식적으로만 받겠다 했다. (하지만 현리 전투 이후 실질적으로 작전권이 다 넘어간다.) 너무 대조가 된다.

5. 맥아더와 그 부하 알몬드(아몬드) 장군. 분명 한국전쟁에서 맥아더의 영향은 컸다. 하지만 이 책뿐만 아니라 여러 책을 읽어봐도 맥아더는 낙동강 전선을 붕괴시킨 상태에서 전선을 유지하여 북쪽으로 기동했어야 했다. 맥아더는 바다에 의해 섬들이 고립된 태평양 전선에서나 효과적인 전술을 육지에서 사용하려 했다. 참모였던 알몬드가 실전 경험을 가지고 싶다 하여 10군단을 맡겼는데, 인천상륙작전으로 재미를 봤으면 되었지 괜히 원산 상륙 작전 한다고 시간만 낭비했다. 알몬드는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 패퇴의 책임을 져야 하고 1951년 현리 전투에서 한국군 3군단을 붕괴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 현리 전투는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권이 실질적으로 이관된 계기가 되었다. 알몬드 나쁜놈.

6. 국공내전, 항일전 등으로 단련된 인민군에 비해서 겨우 공비 토벌 정도만 했던 한국군은 사단급 이상의 지휘 체계를 갖추기 힘들었고 1950년과 1951년 전선에서도 군단급 작전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건 매우 당연했을 것이다. 경험없는 장병들이 훈련을 많이 한 것도 아니니 본격적인 방어체계를 갖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잘 싸웠고 일부는 승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내용들이 별로 없다.)

7. 어디서나 지도자가 중요하다. 모택동, 맥아더, 이승만, 김일성 등의 경우를 보아도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인민을 위한다는 모택동과 김일성은 전략과 전술의 핵심을 찌르면서 지휘를 하였다. 이승만은 전쟁 초기에 도망가기 바빴고 생떼쓰기 바빴다. 

8. 맥아더 이후 리지웨이가 유엔군 사령관을 맡으면서 밴 플리트가 8군을 지휘했는데, 부대 배치를 보면 한국군은 중공군과 북한 인민군의 1차 공격을 막는 몸빵 역할이다. 보급과 병참 문제로 1951년부터 중공군은 1주일 공세만 했었는데, 초반 4~5일 몸빵을 한국군이 고스란히 맞았다. 그 후 6일차부터 반격 작전은 주로 유엔군이 담당했다. 이래놓고 한국군이 허약하다 말하면 말이 되는건가 싶다.

9. 이 책은 주로 중국인민지원군이 "이긴 전투"들만 서술했다. 그리고 자기네들은 "인해전술"을 쓴게 아니라 "병법에 따른 탁월한 전략전술"을 썼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참전한 인민군은 대략 70만이 넘었고 북한군 30만, 한국군 40만, 유엔군 30만 정도 되었단다. 이 정도면 2배 정도 병력되는데, 인해전술 아닌가? 그리고 한 부대를 공략할때 약 3개 부대가 같이 공격했으니 "집중 공격"이고 또 이게 "인해전술" 아닌가? 

10. 책 보면 전투 중 중국 인민지원군들은 죽음도 불사하여 혁명 정신을 전파하겠다고 나섰다. (심지어 이들은 전투중에 미군 포로도 석방했다고 했다.) 그런데 포로로 잡힌 2만여 명 중에서 5000명만 중국 본토로 가고 나머지는 대만으로 가겠다 했다. 어떤가?

11.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 했던가. 전쟁과 전투 경험이 많은 중국 인민지원군이 그때 당시의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유엔군과 잘 싸운 이면에는 철저히 적을 분석한 것에 있다. 

12. 한국군 3군단 해체의 책임이 미군에 있다 해도 작전권 때문에 서러움을 겪었을 유재흥 장군이 지금에 와서는 작전권 환수를 앞장 서서 반대하고 있다. 


전쟁은 액션 활극이 아니다. 전쟁은 비극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UN군 병사들이 살아 돌아가지 못하고 이 땅에 묻혀 있다.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제정신이었으면 그들이 와서 피를 흘렸겠는가. 슬픈 역사는 반복해서는 안된다. 또한, 역사에서 뼈저리게 배워야 한다. 

Comments   3.0 / 1

  오거서 2025.10.16 23:21
중국인 눈으로 본 한국전쟁은 역시 필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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