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삼재
동경 유학생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의 삶과 선택
류시현 저자(글)
산처럼 · 2016년 11월 25일
구한말과 20세기 중반까지, 조선을 주름잡던 3대 천재인 이광수, 최남선, 홍명희 이 세 사람을 "동경삼재" 혹은 "조선삼재"라 하여 비교하였다. 조선시대였으면 만나지도 못했을 세 사람이 어찌어찌하여 신문물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 일본으로 유학갔고 거기서 교류를 하게 되었다. 세 사람의 글은 항시 심금을 울렸고 글 뿐만 아니라 사상에서도 커다란 족적을 남긴 세사람이었기에 저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계기로 변화 발전하였는지가 궁금하였단다.
조선으로 돌아 온 세 사람은 해외에서 배운 문물을 조선에 심고자 했다. 국권을 상실했던 시대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자 했던 세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에 부닥쳤을때 각기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셋 모두 옥고를 치르면서 한 사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 사람은 변절을 생각했고 한 사람은 지조를 지켰다. 지금 와서는 친일과 항일 평가를 내리기 쉬우나 그 지식인들이 2년 혹은 3년 감옥 생활을 하면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변화에 독특한 점이 있다. 춘원 이광수는 어린 시절에 양친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에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육당 최남선 역시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끝끝내는 내선일체에 동조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벽초 홍명회의 경우는 부친이 국권 상실에 제일 처음 자결로 순국하신 분이고 그 유언이 너무도 강렬하여 끝까지 버텼다. 스스로 사상을 터득하여도 위기에서 버티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천재라도 쉽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당대의 고민과 결정을 후대에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의 지식인들이 100년 전으로 돌아 가서 지조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지키기 어려운 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틴 사람을 대단하게 봐야 하지만 이 책의 육당과 춘원 이야기도 그렇게 비난을 해야 할 일일까. 물론 육당과 춘원이 벽초처럼 은거하며 아무 일을 안했다면 그렇게까지 비난할 필요는 없겠으나, 자기 자식들은 보내지 않으면서 반도의 청년 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지원하라 부추긴 점 그 하나만으로도 매우 크게 비난을 받아야 한다. 비록 해방 이후 반민특위의 강제 해산으로 이 두 사람이 별 처벌없이 끝났다지만 명백한 과에 대해서 두 사람이 반성을 하지 않았다면 비난또한 커야 한다. 춘원은 납북되어 평양에서 비참하게 죽었고 육당 또한 한국전쟁 이후 얼마 못 살았다. 벽초는 북조선으로 가서 부총리까지 지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정말 책을 잘 썼는데, 시대에 안 맞는 건지 리뷰가 별로 없다. 시대를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한번 정도는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