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은 폭동이다제도가 실패했을 때, 시민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정당하다. 그리고 이 명제에는 좌우가 따로 없다. 만일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용지를 모자라게 배부해 시민의 참정권 행사를 방해했다면, 그것은 국가기관의 명백한 직무 실패이고, 이에 대한 분노는 합당하다. 여기까지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과연 그 정당한 분노가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형태가 애초의 분노와 여전히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벌어진 일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는 평가할 수 없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이 사건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것을 '잠실 민주화 운동'이라 부른다. 명명에는 힘이 있다. 자신을 민주화 운동이라 부르는 순간, 모든 비판은 반민주적인 것으로 낙인찍히고, 모든 폭력은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정당화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름을 붙인다고 실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실체를 결정하는 것은 그 운동이 무엇을 했는가이므로.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했는가? 이들은 개표가 끝난 뒤에도 두 시간 넘게 출입을 막아 선거관리위원회 직원과 시설 관계자, 취재진 백여 명을 건물 안에 가두었다. 또한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이들을 붙잡아 검문했고, 신분을 요구했으며, 응하지 않으면 수십 명이 따라붙어 길을 막았다. 이것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하는 불심검문의 권한을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적도 없는 자들이 스스로 행사한 것에 불과하다. 한 사회학자는 이를 두고 "국가가 못 하니 우리가 대신한다는 사고방식"이라 진단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라 자경단이다.
그런데 자경단들은 검문에서 멈추지 않았다. 일례로 세계 여자 주니어 선수권대회를 준비하던 핸드볼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 도구를 가지러 왔을 때, 이들은 얼굴 대조를 위해 경기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한 선수가 울면서 애원한 뒤에야 도구를 내주었다. 그런데 나오는 길에 다시 붙잡혀 소지품 검사를 당했고, 한 남성은 양말까지 벗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만일 경찰이 성적 수치심을 이유로 제지하지 않았다면 어디까지 갔을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결국 이 사건의 피의자 중 한 명은 특수강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법원은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구속 여부와 별개로, 부정선거를 막겠다는 명분이 국가대표 선수단의 몸을 수색하겠다는 발상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명분은 이미 자기 자신을 배반한 것에 불과하다.
언론에 대한 태도는 더 노골적이었다. 개표 상황을 취재하던 JTBC 기자단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하자, 이들은 기자단을 에워싸고 태극기로 폭행했다. 이내 안경과 휴대전화를 부쉈고, 가방을 뒤에서 잡아당겼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조차 믿을 수 없다며 물리적으로 막아섰다. 기자가 현장을 벗어나는 데 사십 분이나 걸렸다.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들을 촬영하고 보도하는 기자를 물리력으로 응징한 것이다. 이 모순을 지적하지 않고서는 이 사건을 논할 자격이 없다.
인종주의로의 전이는 더 추악했다. 경찰관을 향해 중국인이나 중국 공안이라 조롱하는 일이 반복됐다. 또한 창문으로 탈출하던 한 여성을 향해 누군가 중국 기자라고 소리치자, 시위대는 짱깨와 북괴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를 합창했다. 이후에는 도망치는 민간인을 백 명이 넘는 인원이 잡아라 외치며 떼로 쫓았고, 넘어진 그 주위로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또한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의 모친이 중국인이 아니냐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의 대답은 정확했다. 증거가 어디 있냐고, 어머니는 상주 양촌 출신이라고.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부정선거를 규명하겠다는 운동이 왜 매번 인종주의적 마녀사냥으로 귀결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처음부터 이것을 지탱한 것은 사실 규명에 대한 갈증이 아니라 적을 찾으려는 충동이었기 때문이다. 적이 선관위에서 부족해지면, 경찰로, 기자로, 급기야 특정 인종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흔히 돌아오는 반박이 있다. 그런 것은 소수의 일탈이고, 대다수는 평범하게 목소리를 낸 시민이라고. 물론 당연하게도 참여 인원 중 실제로 수사 대상이 된 이는 소수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폭동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은 참가자의 비율이 아니라 그 소수의 행위가 지닌 조직성과 지속성, 그리고 다수가 그것을 제어할 수 있었는가이다. 그런데 검문검색은 감시가 허술한 곳에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조직적으로 운영되었고, 감금과 폭행과 특수강요 혐의는 6월부터 8월까지 반복되었다. 무엇보다, 온건한 참가자들이 재선거와 애국가만 외치고 태극기만 흔들자며 벽보를 붙였을 때, 그 벽보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 의해 찢기고 그 자리에 부정선거를 외쳐도 된다는 낙서가 남았다. 따라서 다수가 질서를 지키려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도가 매번 소수에게 압도당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국 소수와 다수라는 숫자놀음으로 이 사건의 성격을 무마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산술을 윤리로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 다른 반박. 이를테면 시위에 직접 가보라는 요구는 반박이 아니라 회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판사는 살인 현장에 있지 않아도 판결을 내리고, 역사가는 전장에 서 있지 않아도 전쟁을 기록한다. 한마디로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체험의 밀도가 아니라 증거의 정합성에 있다. 또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검찰 공소장에, 경찰의 수사 발표에 적힌 사실들은 현장의 공기보다 더 정확하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말해준다. 결국 가보라는 말은 논증의 부재를 감정으로 메우려는 시도이며, 그 요구 자체가 이미 근거를 대지 못했다는 자백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실 낯설지 않다. 실제로 2021년의 워싱턴에서, 2023년의 브라질리아에서, 거의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까.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이 있었고, 정치 엘리트 일부가 그 불복에 정당성을 실어주었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중이 헌법기관을 향해 물리력을 행사했다. 정치학 연구는 이 현상을 이렇게 다룬다. 바로 선거 후에 폭력을 촉발하는 것은 실제 부정선거의 증거가 아니라, 정치 엘리트의 지지를 업은 부정선거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도 여당의 일부 인사는 시위 현장을 찾아 이들을 격려했고, 개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 인사가 방문했을 때는 강하게 축출했다. 이들이 누구를 환영하고 누구를 쫓아냈는가를 보면, 이 운동이 어떤 정치적 좌표 위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미국 의회 난입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반란이라 부를지 폭동이라 부를지를 두고 법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폭동이라는 규정이 반란이라는 규정보다 오히려 온건한 축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올림픽공원의 사태에 폭동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과장이 아니라 절제라고 본다. 조직적인 자경단화, 감금, 폭행, 국정조사 방해라는 헌법기관 기능의 직접적 저지, 이 네 가지가 일어난 사건. 그것을 집회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언어의 태만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진압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진압이라는 단어는 이미 법의 언어를 떠나 힘의 언어로 들어선 말이고, 법치를 지키자는 자가 법의 절차를 건너뛰고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비판하는 자경단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진압이 아니라 법의 철저한 집행이다. 감금한 자는 감금죄로, 폭행한 자는 폭행죄로, 국정조사를 방해한 자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신속하고 예외 없이 처벌받아야 한다. 명분이 아무리 거창해도 법 앞에서 예외를 요구할 자격은 없다. 이것이 관용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는 것을, 법을 만든 이들도 법을 어긴 이들도 함께 알아야 한다.
질서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지켜야만 존재하는 약속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자고 나선 이들이 정작 그 약속을 스스로 깨뜨렸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정당했던 최초의 분노가 아니라 그 분노를 빙자해 벌어진 무질서의 기록뿐이다. 따라서 올림픽공원이 남긴 것은 참정권에 대한 경각심이 아니라, 정당한 분노가 얼마나 쉽게 그 자신을 배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증거다. 그렇기에 올림픽공원은 폭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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