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동수, 존재론적 위장을 두른 결과주의남녀 동수 이론가들은 여성할당제와 자신들을 애써 구별하려 한다. 할당제는 과거 차별에 대한 보상이자 정치적으로 타협이 이뤄진 비율이지만, 동수는 인류가 남녀 두 종으로 구성된다는 존재론적 사실에서 도출되는 천부적 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역차별 논쟁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사를 교체한 것에 불과하다. 결론은 똑같다. 의석의 일정 비율을 성별로 고정하자는 것. 달라진 것은 그 결론을 정당화하는 서사뿐이다. 할당제가 법정에서 패소하자, 같은 목표를 더 방어하기 쉬운 언어로 재포장한 것. 그것이 동수 이론의 실체다.
물론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므로 의회 의석의 절반이 여성이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주장이다. 이 둘 사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하지 않은 채, 종의 이원성은 천부인권이라고만 반복해서 말한다. 선언은 논증이 될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인구의 상당수는 특정 혈액형이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는 특정 연령대 이하다. 인구의 다수는 특정 지역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로부터 의석 비율을 강제로 그에 맞춰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가? 당연하게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성별만 특별한지를 별도로 논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 논증은 없다. 그저 성별이 이항 대립이라는 사실과, 그 이항 대립이 역사적으로 억압과 결부되어 왔다는 사실만을 반복적으로 언급할 뿐이다. 역사적 억압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억압을 교정하는 방법이 반드시 의석 강제 배분이어야 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메우는 논증이 빠져 있다.
타고난 차이에서 강제적 처방이 자동으로 따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 원칙이다. 누군가는 재능을 타고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이 차이들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이, 국가가 나서서 그 차이를 강제로 균등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별 구성비의 자연적 균등성에서 정치적 대표의 강제적 균등성이 도출된다고 보는 것은 이러한 오류의 재판(再版)에 불과하다. 자연스러운 차이라면 방치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는 강제 개입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가.
게다가 지퍼식 공천, 의석 50% 고정, 후보 명부의 강제적 성별 교호 배치는 선거 결과를 사전에 확정 짓는 장치다. 이는 결과주의적 기획의 정치판이며,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를 인위적으로 상쇄하려는 다른 모든 경제적 균등화 시도와 본질이 같다. 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차이를 참지 못하고 제도로 지워버리려 하는가?
윤정인의 논문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결과의 평등을 강제하면 민주주의가 약화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는 현재 민주주의가 결함 없다고 볼 때만 타당하다." 그런데 현재 대의제에 결함이 있다는 것, 즉 성비 불균형 자체가 대표의 왜곡이라는 것이야말로 애초에 증명되어야 할 명제다. 그런데 이를 참으로 전제하고 그 전제 위에서 반론을 기각한다. 이것이 순환논증이 아니면 무엇인가?
독일 튀링겐주 헌법재판소는 동수법을 위헌으로 판결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표란 전체 시민의 대표이지 특정 집단의 대표가 아니다." 이것은 지엽적인 반론이 아니다. 동수 이론의 존재 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판단이다. 그런데 논문은 이 판결을 두고 국가별 맥락이 다르므로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불리한 판례는 국가별 맥락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유리한 타국 사례는 그렇게 좋다고 인용하는가? 이러한 이중 잣대 자체가 이론의 자기방어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고 결정적인 모순이 있다. 동수 이론 전체는 "인류는 남녀 두 종으로 구성된 존재론적 이원성을 가진다"라는 형이상학적 명제 위에 세워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건 보편적 진리 주장이 아니라 실용적 필요에 따라 선택된 프레임일 뿐"이라고 한다면, 애초에 형이상학적 이원성 논증 전체가 필요했던 이유 자체가 사라진다. 실용적 목적에 따라 취사 선택되는 존재론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존재론적 정당화가 아니라 단순한 정치적 편의에 따른 프레임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동수 이론 스스로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정치적으로 결정된 비율이라는 할당제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동수 이론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여성할당제와 마찬가지로 결과의 강제적 조정이다. 다만 그 조정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과거 차별에 대한 보상에서 종의 이원성이라는 자연적 사실로 옮겨 놓았을 뿐이다. 근거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요구하는 결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
※후원문의(읽고 그냥 지나가는 것도 방법이고, 흔적을 남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후원 방법은 링크 접속→카톡 인사→우측 상단 ₩): https://open.kakao.com/me/ealinstipre
제도보전주의, 보수의최초정초, 보수주의, 남녀동수, 할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