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주제분류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베네치아 카니발

[ Carnival of Venice ]

요약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에서 매년 사순절 전날까지 10여 일 동안 열리는 카니발
외국어 표기 Carnevale di Venezia(이탈리아어)
분야 민속 > 종교
지역 유럽 > 이탈리아 > 베네토(Veneto) > 베네치아(Venezia)
개최 시기 매년 1월 말 ~ 2월 사이에 시작해 사순절 전날까지 10여 일 동안 열림. 부활절을 기준으로 매년 시작 날짜가 바뀜.
개최 장소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한 베네치아 전역
시작 연도 1162년
주관 단체 15세기~16세기: 콤파니에 델라 칼차(Compagnie della calza)
17세기~20세기: 베네치아 카니발 컨소시엄(Consorzio carnevalle di Venezia)
2002년 이후: 프로모베네치아(promovenezia)

1. 축제 정의

베네치아 카니발(Carnevale di Venezia)은 매년 사순절 전날까지 10여 일 동안 열리는 축제로, 이탈리아 최대 축제이자 세계 10대 축제에 속한다. 카니발은 전 세계 가톨릭 국가들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펼쳐지는 그리스도교 축제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축제 시작일이 매년 바뀌며, 보통 1월 말에서 2월 사이에 시작해 사순절 전날(Mardi Gras: 마르디 그라, 참회의 화요일)에 끝난다.

12세기에 시작된 베네치아 카니발은 매년 약 300만 명의 방문객과 함께하는 대규모 축제다. 화려한 가면과 옷을 차려 입고 베네치아 곳곳을 누비며 광장을 가득 메운 베네치아 시민들과 관광객은 베네치아 카니발 자체를 상징한다. 축제 기간에는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을 중심으로 베네치아 전역에서 가면축제, 가장행렬, 연극 공연, 불꽃 축제 등이 열린다. 오랜 역사에 기반을 두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행사들은 베네치아 카니발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베네치아 카니발을 대표하는 행사는 축제 기간의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아름다운 가면과 의상 경연대회다.

베네치아 카니발

베네치아 카니발 카니발 기간 내내 베네치아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화려한 가면과 옷을 차려 입고 산 마르코 광장을 가득 메운다.

2. 축제 어원

카니발은 사순절을 앞두고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노는 그리스도교 전통 축제다. 카니발(carnival)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그중 이탈리아어로 ‘고기’를 의미하는 카르네(carne)와 연관 짓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근거한다. 즉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카르네 레바레’(carne levare: to remove meat)와 ‘카르네 발레’(carne vale: farewell to meat)에서 ‘카니발’이 파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새기며 금욕을 해야 하는 사순절 기간이 시작되기 전, 공현축일(Epiphany, 1월 6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 풍족하게 먹으며 연회를 벌이고 서커스, 가면무도회, 거리 축제 등을 즐기던 풍습이 오늘날의 카니발로 자리 잡았다. 한국어로 카니발은 사육제(謝肉祭)라고 하는데, 이 역시 ‘고기를 멀리하다’ 또는 ‘고기를 없애다’라는 뜻이다.

자코모 프랑코, <베네치아 카니발>(1610년)

자코모 프랑코, <베네치아 카니발>(1610년) 17세기 베네치아 카니발의 모습이 판화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3. 축제 유래

현존하는 이탈리아 문헌 중 베네치아 카니발에 대해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베네치아의 비탈레 팔리에르(Vitale Falier) 총독(1084~1094/95년 재임)의 1092년 연대기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베네치아 카니발은 베네치아 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이 1162년 아퀼레이아(Aquileia)와의 분란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벌어진 축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아퀼레이아의 대주교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프리울리(Friuli)와 힘을 합쳐 그라도(Grado)의 영토 분쟁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대주교는 베네치아 군대가 파도바(Padova)와 전쟁을 치르는 사이에 베네치아를 공격했다가 패한 뒤, 열두 영주와 함께 베네치아로 끌려와 매년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베네치아인들은 아퀼레이아 대주교에 대한 승리를 기뻐하며 산 마르코 광장에 모여 춤을 추며 축제를 벌였고, 공물로 바쳐진 소 1마리와 돼지 12마리를 관중이 보는 앞에서 도살했다. 이로부터 매년 아퀼레이아 대주교가 바친 공물을 도살하며 축제를 벌이는 전통이 시작됐다.

4. 축제 역사

1) 12세기~16세기

1162년 아퀼레이아 대주교에게 승리하고 134년이 지난 1296년에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사순절 전날을 축일로 지정했다. 이후 베네치아 카니발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공식 축제로 르네상스 시대 내내 지속됐다. 카니발 기간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불꽃놀이(Macchina dei Fuochi), 전투를 상징하는 무어인의 춤(Ballo della Moresca), 심판을 상징하는 황소 목 자르기(Taglio della Testa al Toro), 평화를 상징하는 천사의 비행(Volo dell’angelo), 단결을 상징하는 인간탑 쌓기(Forze d’Ercole)가 진행됐다. 참회의 화요일이 다가올수록 축제는 절정에 달했고, 마지막 날에는 가면과 의상을 선보이는 가장행렬과 함께 밤늦도록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베네치아 카니발

베네치아 카니발 카니발은 베네치아 전역에서 개최된다.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카니발은 베네치아의 젊은 귀족들로 구성된 단체가 주도했다. 이러한 청년 단체를 콤파니에 델라 칼차(Compagnie della calza: ‘양말 친구들’이라는 뜻)라 불렀는데, 이들은 양말 색깔로 소속과 신분을 구분했다. 1487~1565년에 베네치아에는 이러한 단체가 모두 23개나 있었다고 하며, 이들이 카니발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2) 18세기

1797년에 오스트리아가 세운 롬바르도베네토 왕국(Regno Lombardo–Veneto)이 베네치아를 지배하게 되면서 카니발은 억압받기 시작했다. 결국 1798년에 카니발은 불법 행위로 간주됐고, 특히 가면 착용이 엄격하게 금지됐다. 그 후 베네치아 인근 섬 등지에서 간신히 명맥이 이어지던 카니발은 1930년대 무솔리니(Mussolini)의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다시 금지됐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1979년이 돼서야 비로소 베네치아 카니발은 재개될 수 있었다. 베네치아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치아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기로 결정했고, 그러한 노력의 핵심 과제로 전통 축제의 부활을 꼽았다. 이때부터 카니발 위원회가 조직돼 축제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하면서 베네치아 카니발은 이탈리아 최대 축제로 발전해갔다.

베네치아 카니발

베네치아 카니발 베네치아 시민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하고 있다.

5. 축제 주요 행사

카니발 기간에는 음악, 연극,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베네치아 카니발은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다른 카니발에 비해 이탈리아의 역사와 베네치아 지역의 전통을 충실하게 되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 황소 목 자르기(Taglio della testa al toro)

전통적으로 사순절 전 ‘기름진 목요일’(Giovedi grasso, Fat Thursday)에는 베네치아 카니발의 가장 오래된 의식인 ‘황소 목 자르기’ 행사가 열렸다. 예나 지금이나 카니발 기간 중 가장 분위기가 고조되는 날은 ‘기름진 목요일’과 사순절 전날인 ‘기름진 화요일’(참회의 화요일)이다. 12세기에 베네치아를 공격했다가 패배한 아퀼레이아 대주교는 황소 1마리와 돼지 12마리를 베네치아에 바치기로 했다. 베네치아인들은 아퀼레이아에 대한 승리의 축제를 벌이던 중 대주교가 바친 동물들을 총독과 귀족, 대중이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죽였다. 이는 곧 카니발의 주요 행사로 자리 잡았으나, 1525년 칙령으로 중단됐다가 황소 1마리의 목을 자르는 행사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카니발 기간 중 기름진 목요일이 되면 푸줏간 사람들과 대장장이, 수공업자들이 모여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행진해갔다. 이들이 광장에 도착한 후 베네치아 총독과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꽃으로 장식한 황소의 목을 자르는 것은 베네치아 카니발을 대표하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황소 목 자르기 행사는 잔인하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2) 마리아 축제(Festa delle Marie)

마리아 축제는 베네치아 총독이 아름답지만 가난한 소녀 열두 명에게 신부의 지참금으로써 보석을 나누어주던 전통에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베네치아 전통 의상 퍼레이드의 의미를 지니는데, 선발된 소녀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호위를 받으며 산 마르코 광장까지 행진한다. 광장에서 소녀들을 기다리며 환호하는 관중에게 소개되는 소녀들 중 한 명이 선택되어 이듬해 베네치아 카니발의 ‘천사 강림’ 이벤트에서 천사 역할을 맡는다.

마리아 축제

마리아 축제 마리아로 선정된 소녀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호위를 받으며 산 마르코 광장까지 행진한다.

3) 천사 강림(Volo dell’angelo)

천사 강림은 ‘천사’가 산 마르코 광장 종탑에서 광장 바닥까지 늘어뜨린 줄을 타고 총독에게 경의를 표하며 내려오는 것으로, ‘천사의 비행’이라고도 한다. 한동안 비둘기 모양의 나무 로켓이 천사를 대신해 날아 내려오면서 산 마르코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의 머리 위에 꽃을 뿌렸으나, 2001년부터는 다시 천사가 내려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천사 역할은 배우, 모델, 가수, 운동선수 등이 해왔는데, 2011년부터는 전해 마리아 축제에서 선택된 소녀가 이듬해 카니발의 천사 역할을 맡고 있다.

산 마르코 광장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카니발의 중심무대인 산 마르코 광장을 상징하는 종탑은 높이가 99미터에 달한다.

2007년 베네치아 카니발의 천사 강림

2007년 베네치아 카니발의 천사 강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수상자인 수영선수 페데리카 펠레그리니가 천사가 되어 내려오고 있다.

4) 아름다운 가면 경연대회(La maschera più bella)

카니발 기간에 진행되는 여러 행사 가운데서도 특히 마지막 주말에 산 마르코 광장에서 개최되는 아름다운 가면 경연대회는 베네치아 카니발을 대표하는 중심 행사다. 베네치아 카니발은 곧 가면축제와 동일시 될 정도로 카니발 기간 내내 가면과 함께한다. 가면과 의상을 차려 입고 베네치아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는 시민과 관광객은 물론 상점마다 걸려 있는 화려한 가면들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가면 경연대회에는 전통 가면과 현대 가면이 출품돼 솜씨와 개성을 뽐내며 국제 복식 전문가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심사에 참여한다.

아름다운 가면 경연대회

아름다운 가면 경연대회 베네치아 카니발은 곧 ‘가면축제’와 동일시 될 정도로 카니발 기간 내내 가면과 함께한다.

6. 베네치아 가면

1) 베네치아 가면의 역사

베네치아에서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부터다. 1204년 베네치아 총독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가 제4차 십자군 원정에서 무슬림 여인들을 데리고 귀환했는데, 이 여인들의 머리와 얼굴을 가린 베일에서 착안해 가면 유행이 시작됐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가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68년 5월의 법령이다. 이에 따르면 가면을 쓴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계란을 던져 시의회가 가면 착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가면이 지나치게 유행하면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저지르는 범죄 같은 크고 작은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자 법으로 가면 착용을 통제한 것이다. 1339년 2월, 베네치아에서는 밤에 가면을 쓰고 시내를 다니는 것이 금지됐고, 1458년 1월에는 남자가 가면을 착용하고 여자 수도원에 출입하는 것 또한 금지됐다. 1608년에는 베네치아인들과 더불어 이방인들까지도 카니발 기간과 공식 연회에서만 가면을 착용할 수 있게 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옥살이, 노역, 벌금형에 처했다. 1658년에는 가면을 쓸 때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는 법령이, 1699년과 1718년에는 종교적인 축일에도 가면을 착용해선 안 된다는 법령이 공포됐다.

18세기에는 가면을 쓸 수 있는 기간이 법으로 정해졌다. 베네치아인들은 그리스도 승천일(10월 5일)부터 성탄절(12월 25일)까지, 산토 스테파노 축제(Santo Stefano, 12월 26일)부터 참회의 화요일 자정까지 가면을 쓸 수 있었는데, 이것만 따르더라도 사실상 베네치아인들은 1년 중 상당 기간을 변장한 채 지낼 수 있었다. 1797년, 오스트리아가 베네치아를 지배하게 되면서 카니발과 함께 가면 착용이 금지됐다가 1979년 카니발이 부활할 때 가면도 다시 등장했다. 이후 베네치아 대학생들이 가면을 제작해 기념품으로 팔기 시작하면서 베네치아의 가면은 현대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하며 베네치아 카니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2) 가면 제작

베네치아의 가면 제작자와 판매상들은 장인으로서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가면의 디자인과 형태는 물론 장식과 조형미를 더하는 작업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으며, 조합을 결성해 규칙에 따라 일했다.

베네치아 가면은 전통적으로 종이와 가죽, 도자기, 유리 등을 이용해 만든다. 원래는 장식성과 함께 실용성과 상징적 의미가 강조됐지만, 오늘날에는 편의상 석고로 만들어 금박을 입히고 깃털과 보석으로 장식하거나 손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 등 화려하게 변화했다.

종이 가면은 석고로 만든 틀에 종이를 여러 차례 바르거나 종이반죽을 부어 만든다. 우선 석고틀에 바셀린을 발라 나중에 잘 분리되도록 한 후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흡수력이 좋은 종이를 잘게 찢어 고르게 여러 겹 붙인다. 이렇게 형태를 잡아 건조시킨 가면을 세심하게 다듬으며, 눈 부분을 오려내고 표면을 곱게 사포질한 뒤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구워 광택을 낸다. 이렇게 가면의 원판이 만들어졌으면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장식하는데, 주로 물감, 금 · 은 세공품, 보석, 유리 등을 이용한다. 현대에는 아크릴 물감과 구슬, 금속 장신구, 아름다운 천이나 종이, 깃털 등으로 다채롭게 장식하고 오선지나 타로 카드를 붙이기도 한다.

가죽 가면을 만들 때에는 먼저 모양에 따라 가죽을 자른다. 잘라낸 가죽을 물에 적셔 그늘진 곳에 하룻밤 두면 형태를 쉽게 잡을 수 있다. 가죽을 준비된 주형이나 가면 쓸 사람의 얼굴에 잘 맞춘 뒤, 완전히 마르기 전에 가면마다 지니는 특징에 따라 변형을 가한다. 가죽이 완전히 말라 형태가 고정되면 다듬어가며 색칠을 해서 종이 가면과 마찬가지로 장식한다. 베네치아 가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3) 가면의 종류

베네치아 카니발에 등장하는 많은 가면들은 즉흥극의 일종인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의 등장인물에서 유래했다. 《코메디아 델라르테》는 중세 유랑극단의 소극에서 형성, 발전했다고 전해지는 가면극이다. 기원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비잔티움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고전문학에 바탕을 둔 스토리는 사랑, 질투, 불륜, 인생을 주제로 하며, 전형적인 극적 상황, 가면이 상징하는 인물과 레퍼토리를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가면극이 16~18세기에 베네치아에서 널리 유행하면서 인기 있는 등장인물들의 가면과 복장이 유행했고, 그 역할의 이름을 딴 가면들이 베네치아 카니발을 대표하게 됐다. 카니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의 한 부분 또는 얼굴의 반만 가리는 가면들이 바로 이 가면극에서 유래했는데, 배우들의 대사가 크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분 가면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이들 가면은 착용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다.

· 콜롬비나(Colombina)
콜롬비나 가면은 눈, 코와 턱 윗부분만 가리는 반쪽 가면으로, 보통 금, 은, 크리스털, 깃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며 막대나 리본을 달아 얼굴에 고정한다. 콜롬비나는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등장하는 말괄량이 하녀다. 이 가면은 콜롬비나 역할을 맡은 한 배우가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싶어하지 않은 데서 탄생했다고 전하지만, 명확한 사료에 근거한 이야기는 아니다. 원래 여성용 가면이지만 지금은 남녀공용으로 사용된다.

콜롬비나 가면

콜롬비나 가면 즉흥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말괄량이 하녀인 콜롬비나 역할에서 유래한 가면이다.

· 메디코 델라 페스테(Medico della peste)
새처럼 긴 부리가 특징인 메디코 델라 페스테 가면은 17세기에 루이 13세의 주치의였던 샤를 드 롬(Charles de Lorme)이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군복에서 힌트를 얻어 머리부터 발까지 보호하는 옷을 입고 페스트를 치료했다고 한다. 이후 샤를 드 롬의 복장을 착용한 ‘페스트 치료 의사’가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고정 배역으로 등장했다. 그는 긴 부리가 달린 가면에 검은 모자를 쓰며, 발끝까지 오는 코트를 입고 흰 장갑을 낀다. 여기에 지팡이를 들고 역시 부리가 달린 흰 마스크를 쓰고 동그란 눈구멍에 투명 유리를 끼운다. 메디코 델라 페스테 가면이 카니발에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고 한다.

메디코 델라 페스테 가면

메디코 델라 페스테 가면 즉흥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페스트 치료 의사 역할에서 유래한 가면이다.

· 아를레키노(Arlecchino)
아를레키노 가면은 얼굴 위쪽을 가리는 검은색 반쪽 가면으로, 둥근 눈썹에 납작한 코가 특징이다. 이 가면은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하인 아를레키노 역에서 유래했다. 어리석고 감정적인 인물 아를레키노는 판탈로네의 하인으로 콜롬비나를 연모한다. 그는 이리저리 부딪치며 좌충우돌 웃음을 선사하고 극적인 순간에 뛰어난 곡예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어에서 ‘아를레키노’는 영어의 ‘할리퀸’(harlequin)에 해당하며 ‘익살꾼’이라는 뜻이다.

· 브리겔라(Brighella)
브리겔라 가면은 녹색의 반쪽 가면으로 굴곡이 많고 울퉁불퉁해 욕정과 탐욕으로 가득한 표정을 나타낸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브리겔라는 비천한 신분에 교활하며 욕심이 많은 인물이다. 아를레키노의 동료로 훨씬 영리하고 연륜이 높은 브리겔라는 돈을 모아 선술집 주인이 된다. 그는 가난을 딛고 일어선 뒤 항상 음모를 꾸미며 딱한 이들에게는 사정없이 잔인하게 군다. 브리겔라는 익살스런 몸짓으로 과장된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주는데, 초기에는 가면과 함께 헐렁한 흰 옷을 입고 나무로 된 단검을 찼으며 이후 망토가 추가됐다.

· 잔니(Zanni)
잔니 가면은 끝이 위로 휘는 긴 코가 특징으로 얼굴 윗부분을 가리는 반쪽 가죽 가면이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잔니는 상스럽고 교활하며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인이다. 잔니는 일반적으로 당시 농민들의 복장과 비슷한 헐렁한 흰 옷을 입고 모자와 작은 목검을 착용한다. 초기에 잔니 가면은 얼굴 전체를 덮었지만 극 중 대사를 살리기 위해 눈과 코만 가리는 반쪽 가면으로 변형됐다. 가면의 코가 길수록 더 어리석다고 여겨진다.

· 바우타(Bauta)
바우타의 어원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독일어 동사 ‘베휘텐’(behüten, 보호하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간다는 ‘바우바오’(bau-bao)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얼굴 전체를 덮는 바우타 가면은 원래 순백색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금박을 입힌다. 코, 이마와 눈 사이의 굴곡, 깎아지른 턱선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며, 입은 없는 대신 부리를 연상시키는 턱이 가면을 쓴 채 먹고 말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바우타를 쓴 사람은 보통 삼각 모자에 검은 망토나 붉은 망토를 걸친다.

18세기에 베네치아 정부는 바우타와 검은 망토(Tabarro)를 표준 가면과 변장으로 지정해, 익명을 요하는 정치적 결정이나 회합이 있을 때는 바우타를 쓰고 검은 망토를 걸쳐야 했다. 베네치아 시민만 바우타를 쓸 수 있었는데, 이 복장을 착용할 때는 무기 소지가 엄격히 금지됐다. 보통 남성들이 착용했지만 18세기의 그림들에는 바우타에 삼각 모자를 착용한 여성들의 모습이 더러 등장한다.

바우타 가면

바우타 가면 남자들이 보통 많이 착용하며, 삼각 모자에 검은 망토 또는 붉은 망토를 함께 걸친다.

· 모레타(Moretta)
모레타 가면은 검은색 벨벳으로 만드는 여성용 가면이다. 타원형에 눈구멍만 크게 뚫어 만들며 크기는 얼굴의 중심부만 가려 신원을 간신히 숨기는 정도다. 모레타 가면은 ‘모레타 무타’(Moretta Muta) 혹은 ‘세르베타 무타’(Servetta Muta)라고도 불리는데, ‘무타’(Muta)는 벙어리라는 뜻이다.

가면 안쪽의 고리나 단추를 입에 물고 가면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가면을 착용하면 말을 할 수 없다는 데서 붙은 명칭이다. 신분을 완전히 감추기 위해 모레타를 착용하고 다시 베일을 덮는 경우도 흔했다. 모레타는 원래 프랑스에서 생겨났지만 베네치아에서 유행했으며 공공장소에서 숙녀의 신분을 감추는 용도로 널리 이용됐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나 커피 하우스를 묘사한 여러 그림에 모레타가 등장하지만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고, 1760년경부터는 사용되지 않다가 현대에 와서 부활했다.

피에트로 롱기,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1751년경)

피에트로 롱기,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1751년경) 앞줄의 삼각 모자를 쓴 남자는 바우타를, 뒷줄의 여자는 작고 검은 타원형 가면 모레타를 썼다.

· 볼토(Volto)
볼토 가면은 코와 입이 갖추어진 얼굴의 단순화된 형태로, 오랫동안 ‘시민의 가면’이라 불렸을 만큼 인기 있는 가면이다. 볼토는 이탈리아어로 ‘얼굴’을 의미한다. 볼토 가면은 원래 흰색이지만 최근에는 금박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삼각 모자와 코트를 함께 착용한다.

초기에는 얼굴 위쪽만 가려서 자유롭게 얘기하며 먹고 마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얼굴 전체를 가리고 끈으로 묶어 고정하며 입 부분에 구멍이 없어서 가면을 쓰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볼토는 라르바(Larva: 유령)라고도 불리는데, 어두운 밤의 골목이나 달빛 아래서 흰색 볼토를 보면 유령과 마주친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 가토(Gatto)
이탈리아어 ‘가토’는 고양이를 의미하며, 가토 가면은 말 그대로 고양이 얼굴 형태의 반쪽 가면이다. 고양이가 매우 드물던 베네치아에서 축제마다 등장하여 인기를 얻은 전통 가면이다.

가토 가면

가토 가면 고양이가 드물던 베네치아에서 인기를 얻은 고양이 가면이다.

참고문헌

출처

제공처 정보

세계 축제 · 기념일 백과사전은 네이버가 기획하고 출판을 지원한 지식백과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네이버와 (주)도서출판 다빈치가 협력해 만든 콘텐츠입니다.

  • 글, 감수 류정아 연구/학술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기획조정실장, 융합연구실장 역임. 프랑스 파리 국립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 축제 분석으로 ‘사회인류학 및 프랑스 민족학’ 박사학위 받았다. 저서로 『전통성의 현대적 발견: 남프랑스의 축제문화』. 공저로 『축제, 민주주의, 지역활성화』 『축제와 문화』 『유럽의 축제 문화』 등이 있다. 『축제와 문명』을 번역했고 논문으로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결사체와 수레 축제」 「파리 5월 학생혁명이 가지는 축제적 성격 분석」 등을 발표했다.

  • 글, 감수 오애리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사학과 석사 수료. 『출판저널』과 『세계일보』 기자로 일했고, 『문화일보』에서 국제부장과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국제부 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노엄 촘스키의 『정복은 계속된다』, 마이클 무어의 『세상에 부딪쳐라 세상이 답해줄 때까지』 등을 번역했다.

  • 사진, 감수 김홍희 사진작가

    2000년 문예진흥원이 주관한 ‘한국의 예술선 2000’과 ‘한국의 이미지 메이커 500인’에 선정됐다. 2008년 니콘이 창사 90주년 기념을 맞아 선정한 ‘세계의 사진가 20인’으로 니콘 홈페이지에 소개됐다. 《골목: 시간의 통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몽골 방랑》 《푸른 방랑》 《도쿄는 따뜻한 겨울》 《동급생》 등 개인전을 20여 회 열었다. 저서 『김홍희의 몽골 방랑』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결혼시말서』 『나는 사진이다』 『방랑』 등을 썼고 『방외지사』 『예술가로 산다는 것』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등 여러 책에 사진 저작으로 참여했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에 작업실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