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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바꾼 선택 ‘타이니 하우스’…“삶과 생활에 의문을 느낄 때”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입력 : 2018-11-04 13:00:00 수정 : 2018-11-02 1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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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은 흔히 “집을 삼대에 걸쳐 산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살인적인 집값에 조부모가 빚을 내 구입한 집을 손자세대에서 상환을 끝낸다는 말이다. 그 덕에 집은 부의 상징처럼 여겨져 많은 일본 직장인들은 지금도 내 집 마련을 인생에 걸쳐 해결해야 할 무거운 숙제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진이 빈번한 일본이기에 삼대가 피땀 흘려 마련한 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내 집 마련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아온 30대~40대들 사이에서 기존 가치관에 의문을 품고 ‘작지만 여유로운 삶’을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타이니 하우스는 ‘6평 정도 크기에 가격은 1억원 미만, 차로 견인해 이동할 수 있는 집’을 말한다. 사진= 커뮤니티 캡처
◆ “간단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일본 동양경제에 따르면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서 먼저 나타났다.

미국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집값이 폭락하고, 허리케인 등의 자연재해가 겹쳐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악재를 겪은 사람들 중에는 ‘큰 집은 풍요의 상징’이라는 기존 가치관을 버리고 ‘카라반(이동식 주택·차량에 매달아 끌고 다님)’을 끌고 여행을 즐기며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일본에서 ‘타이니 하우스(작은 집)’의 등장과 선호도 이런 미국 사례와 유사하다.

타이니 하우스는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진도 9의 지진으로 수조엔의 재산피해와 엄청난 인명피해, 후쿠시마 원전 파괴에 따른 방사성 물질 유출 등 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미국 등 유럽에서도 타이니 하우스가 애용된다. 사진= 커뮤니티 캡처
그 후 일본에서 ‘소유하지 않고 간단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이 자유로운 ‘타이니 하우스’가 등장했다.

또 일본 정부의 일하는 방식 개혁과 기존 ‘종신고용(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일본특유의 기업제도)’가 약화하는 등 여러 요인까지 겹쳐 ‘인생 전면 재검토’라는 가치관이 젊은 세대로 확산돼 타이니 하우스에 관심이 높아졌다.

◆ 타이니 하우스란?

타이니 하우스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으나 관련 미디어 운영 및 이벤트 기획을 하는 프로듀서 A씨는 “약 20㎡(약 6평) 크기에 가격은 1000만엔(약 1억 900만원) 이하, 차로 견인해 이동할 수 있는 집”이라고 설명했다.

1000만엔 미만으로 가격을 한정하는 건 다수의 30~40대 직장인들이 대출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저렴한 가격은 대출상환을 위해 장기간 일할 필요가 없고, 경제적 여유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등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픈 이들에게 좋은 선택이 되고 있다.

일본의 한 캠핑장에 설치된 타이니 하우스. 국내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 커뮤니티 캡처
◆ “내 삶과 생활에 의문을 느낄 때”

관련 기업 자료를 보면 타이니 하우스의 선호는 남녀를 불문하고 주로 30대~40대에게서 나타난다.

기업에서 일을 주도해 나가는 이들 30·40대는 경제적 여유는 확보했지만 바쁜 일상에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하거나 여가, 취미 등 자신을 위한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또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지자 지금의 ‘삶과 생활이 과연 정답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돼 이 것이 타이니 하우스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50대~60대도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정년퇴임한 이들은 젊은 세대와 달리 거주목적이 아닌 별장처럼 이용한다. 예를 들면 바다가 근처에 집을 설치하고 시간 날 때 들러 잠시 쉬었다 가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주를 목적으로 하는 세대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남는 땅에 타이니 하우스를 설치해 유휴지 활용과 인구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다소 부족한 20대~30대 초반 젊은 층은 타이니 하우스 대신 차를 타고 여행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이른바 ‘카박’을 즐긴다. 국내 차량 제조사에서는 볼 수 없지만 일본 완성차 기업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경차와 스포츠 유틸리티(SUV)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차량을 시장에 선보여 인기를 얻고 있다.

◆ 타이니 하우스 살아보니..“낭만이 필요하다”

타이니 하우스는 ‘저렴한 가격, 자유로운 이동과 설치로 언제 어디서든 내 맘대로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매우 작고, 전력공급, 상하수도 문제 등 주택과 비교해 불편이 뒤따른다.

그렇기에 살아본 사람들은 우스갯말로 “불편을 감수할 낭만이 필요하다”고 한다.

타이니 하우스에서 4년째 사는 스즈키 나오 씨는 이전엔 45평대 2층 주택을 빌려 살았다. 당시 그는 건강 악화로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일 적으로도 지친 상황이었다.

지친 스즈키씨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어떤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싶나’라는 생각에 잠겼고, 타이니 하우스에서 그 답을 찾았다.

산과 들이 아름다운 곳에 타이니 하우스를 마련한 스즈키씨는 “넓은 집에 살 때 보다 생활 만족도가 높아졌다”며 “매달 높은 임대료가 발생하지 않아 적은 수입으로도 생활이 유지된다”고 했다. 그는 “필요한 생활비가 줄어 밤늦도록 일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 행복하다“며 “타이니 하우스는 내부공간이 좁아서 정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등 여러 불편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 절약한 비용으로 가족과 해외여행을 즐긴다”고 만족해 했다.

최근에는 사용자 요구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 커뮤니티 캡처
타이니 하우스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동을 중시했지만 최근에는 부족한 공간을 키우거나 발코니를 설치하는 등 사용자 취향에 맞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프리랜서 등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미니멀 라이프 등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나타나는 요즘, 간단하고 자유로운 삶인 타이니 하우스가 우리사회에 유행될지도 모르겠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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