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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조사 등 의혹만 있어도…국민연금 "경영 개입가능"

유준호 기자
입력 : 
2019-01-21 17:31:22
수정 : 
2019-01-21 17: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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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논란

갑질 등 사회적 물의 기업에
강력한 주주권 행사 예고
전문가들 "헌법 침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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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최근 '수탁자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국내 상장사에 대해 광범위한 경영 참여 가능성을 열어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향후 주주 활동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내부 지침을 마련하면서 법원 판결이 아닌 검찰과 경찰의 수사 착수 등 국가 기관의 조사만으로도 경영 참여를 검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피해 규모와 처벌 가능성 등을 고려해 평가하겠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범죄 사실에 대한 확정 없이 여론 재판에 몰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16일 수탁자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을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7월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의 후속 조치로 향후 국민연금의 주주 활동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내부 지침이다.

국민연금은 중점관리사안과 예상치 못한 우려 등 두 갈래로 수탁자책임 활동을 나누고 경영권 참여 주주 활동이 가능하도록 길을 텄다. 중점관리사안은 당초 알려진 대로 저배당과 임원 보수 한도 과다,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 법령위반 행위다. 예상치 못한 우려 등으로는 컨트러버셜 이슈,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ESG) 평가 하락을 적시했다. 아울러 가이드라인에는 손해배상소송과 주주대표소송 등 주주 활동과 관련한 소송 절차 등이 담겼다.

지난해 7월 발표된 내용을 구체화한 셈인데 일부 규정은 법적 근거가 부족한데도 과도하게 활동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예상치 못한 우려 중 하나로 컨트러버셜 이슈를 꼽았는데 이는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나 쟁점이 되는 이슈를 총칭한다. 국민연금은 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 상장주식에 대한 검경의 수사 착수 등 국가 기관의 조사만으로도 비공개 대화 진행, 의결권 행사 연계, 공개 서한 발송,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수탁자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이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현재는 의혹만 제기되면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건데 판례를 보면 경영진이 형사 책임을 진다고 해서 이사 선임 배제 등 경영권을 제약할 수는 없다"며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해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126조) 가치를 침해한다"고 평가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국민연금이 가치판단을 해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법이 위임한 권한 밖이고, 더욱이 자의적 잣대로 개입하는 것은 수익 극대화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경영권에 개입해 일부 세력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기업 경영에 투영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라고 평가했다.

민간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가 지닌 막강한 권한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이 문제 있는 기업에 대한 주주 활동은 '비공개 대화→비공개 중점관리 기업 선정→공개 중점관리 기업 선정→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 검토 등 4단계로 나뉘는데, 수탁자책임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단계를 건너뛰고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구조다.

사실상 '불량 기업 잡는 호랑이' 역할을 맡긴 셈이지만 정작 수탁자책임위원회를 견제할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평가다. 금융거래정보 제공 동의서와 이해 상충 여부 확인서 제출, 회의록 작성 보관 등이 전부다. 그나마 이마저도 이번에 논란의 중심이 된 수탁자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에서는 빠졌다.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A교수는 "민간 전문가들에게 결정을 맡기겠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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