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연대기 (1)고시원 생활 청년

“자가격리도 거리 두기도 우리에겐 ‘특권’입니다”

2020.09.22 15:39 입력 2020.09.22 15:59 수정 고근형
우리는 코로나 시대의 생존자들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좁은 방구석에 갇혔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업무를, 수업을, 식사를, 육아를, 쉼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목숨을 지키는 대가로 가진 것들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사업장이 문을 닫아서, 과외를 쉬어야 해서, 버스가 무서워 택시를 타느라, 단골 식당이 아닌 배달 음식을 먹어서, 낮에도 집에서 에어컨을 켜야 하기에 알게 모르게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것을 ‘코로나 비용’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대책 없이 빠져나가는 이 코로나 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코로나의 증인들입니다.

모두가 힘든 이 상황에, 우리의 목소리는 배부른 소리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살아 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배부른 소리를 더욱 높여 알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너도 나도 떠들기 시작해 모두의 하소연이 세상에 울려퍼져야만, 진정으로 배고픈 자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이지 못하는 우리는 여기 ‘방구석’에서 코로나를 증언하겠습니다. 사회로부터 어떻게 코로나 비용을 지불 ‘당’했고, 그래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떠들겠습니다. 우리 5명의 청년들은 지금, 코로나에 맞서기 위한 ‘방구석 연대기’를 써보려 합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누군가 16명이 함께 쓰는 세면대에 피 섞인 가래를 뱉어놓았다. 지난 2월 신천지 사태로 인한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일 때 내가 살던 고시원 화장실에서 발생한 일이다. 누군가는 코로나19를 ‘우한 폐렴’으로 부르던 시절. 하지만 그 누구도 피 섞인 가래를 보며 방을 옮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이들이었고, 고시원의 일상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거리 두기, 자가격리도 그 곳에선 특권이었다.

자가격리가 특권이라고? 특권이다. 나는 운좋게 자가격리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만약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면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자가격리 지침을 보자. 우선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해야 한다. 그러자면 당장 나는 생리현상부터 해결할 수가 없다. 16명이 하나의 화장실과 샤워실, 세탁기를 함께 쓴다. 화장실을 쓰려고만 해도 자가격리 장소 이탈이다.

식사는 혼자서 하기. 역시 언감생심이다. 물론 자가격리자로 지정되면 당국이 비상식품과 식재료를 제공한다. 문제는 고시원에 주방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공용주방 1개에 그친다.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는 마음 놓고 식사 한 끼를 못 한다. 그렇다고 매 끼니를 배달음식으로 때우자니 고시원 사는 처지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먹고 싸는 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일 텐데, 그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도 자가격리를 어겨야 하는 곳이 고시원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자가격리 지침, 방문은 닫고 창문을 열기. 운 좋게도 내 방에는 창문이 나 있었지만, 창문 열기는 수많은 고시원 거주자의 숙원이기도 하다.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시당이 조사한 ‘2019 관악구 고시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시원 중 약 68%가 창문이 없는 호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환기가 안 되는 공간은 바이러스의 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서 과연 병이 나을 수나 있을까.

따지고 보면 냉난방도 문제다. 당장 내가 살던 고시원의 냉방기는 중앙제어 작동이라 심야 시간에는 작동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전에야 카페나 지인의 집에 머물며 더위를 식혔겠으나,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지금은 그마저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시원 중 약 17%가 냉방기 없는 호실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11월 1~5평 거주 청년들이 자신이 살기 원하는 집에 대한 바람을 담은 종이가 붙어 있다. 김기남 기자

상황이 이러니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기를, 주변에 감염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18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자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고시원 거주 가구는 15만 가구다. 옥탑, 반지하 같은 비주택시설 전체로 넓히면 거의 40만 가구다. 좋은 집을 구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40만 가구가 방역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셈이다.

물론 정부의 방역지침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유례 없는 감염병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는 당연히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만 우리에게는 거리를 둘 공간이 없을 뿐이다. ‘집콕’을 실천하면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집. 양질의 주택이 없는 우리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자가격리는 하늘의 별처럼 멀리 있다.

그래서 고시원, 쪽방 등 열악한 시설 거주자에게 양질의 공공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주거정책인 동시에 꼭 필요한 방역정책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런 시설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좁은 건물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있다. 밀집시설이란 뜻이다. 만에 하나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했다면, 방역 당국이 손 써보기도 전에 무더기 확진자가 나올 수 있는 조건이다. 방역망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고시원, 쪽방 거주자를 긴급히 구제해야 한다.

돈은 없지 않다. 2017년 부동산 불로소득만 300조원이 넘고, 연기금은 900조원이 넘는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모두 환수하고 연기금 등을 활용해 하루빨리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이들도 마음놓고 ‘집콕’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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