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이 문재인 대통령 보고를 거쳐 헌정 사상 처음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킨 것에 대해 검찰은 26일 일선 지검·지청의 평검사부터 최상층 고검장까지 “총장 직무집행 정지 명령은 위법하고 부당하다”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검찰 일반 공무원을 총괄하는 각 검찰청 사무국장 20여 명도 동조 성명을 냈다. 검찰 역사에서 평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한 크고 작은 ‘검란(檢亂)’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검찰 상하 조직 전체가 들고일어나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사상 초유의 대형 검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4일 오후 추 장관이 윤 총장 직무 정지를 전격 발표하자, 25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평검사들과 대검 부부장급 이하 검사들이 “법무부 장관 처분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공개 입장문을 낸 것을 시작으로 26일 전국 검찰 조직의 성명 발표가 잇따랐다.

“검찰총장 내쫓았지 않나”… 7년 전엔 호통친 秋 - 2013년 11월 대정부질문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추미애 법무장관이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열심히 하고 있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내쫓았지 않느냐”고 질타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책임지던 채 전 총장은 이해 9월 개인 도덕성 의혹이 제기되자 사의를 표명했다. 추 장관은 이어 “수사와 기소를 주장했던 수사 책임자(윤석열 현 검찰총장)도 내치지 않았느냐”며 정 총리를 몰아붙였다. /TV조선

이날 오후까지 전국 59개 일선 검찰청 가운데 41곳(지검 14·지청 27)에서 평검사들이 “윤 총장 직무 집행 정지를 취소하라”고 요구했고 대검 중간 간부 27명과 서울중앙지검 사법연수원 35기 부부장검사들, 전국 검찰청 인권감독관들이 단체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지검장 20명 중 이성윤(서울중앙)·김관정(서울동부)·이정수(서울남부) 지검장을 제외한 17명도 실명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또 총장을 제외한 최상층 간부인 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수원고검장 6명 전원도 “특정 사건의 총장 판단을 문제 삼아 직책을 박탈하려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고검장급인 배성범 법무연수원장은 검찰 내부망에 별도로 글을 올려 동참했다.

이들은 ‘윤 총장의 직무 집행 정지 조치가 검찰 독립과 중립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법치주의 훼손’이라고 반발했다. 따라서 이번 ‘검란’은 단순히 윤 총장 직무 배제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을 특정 정파·정권에 예속시키려는 집권 세력의 시도에 저항하는 성격을 띤다고 법조계에서는 해석한다.

전날 직무 정지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낸 윤 총장은 이날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윤 총장 측은 “상식적 판단에 맡겨보자”며 추 장관이 주장한 ‘판사 사찰’ 문건 일부도 공개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날 ‘판사 사찰’이라 주장하며 윤 총장을 수사 의뢰했다.

감찰관이 윤석열 수사의뢰 거부하자…추미애, 측근 시켜 강행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6일 본인이 제기한 대검의 ‘판사 사찰’ 의혹과 관련,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에 수사 의뢰를 했다. 복수의 법무부·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윤석열 총장 수사 의뢰를 상관인 류혁 감찰관의 결재를 받지 않고 전결(專決)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류 감찰관은 반대 의견을 냈으나, 추 장관의 지시로 수사 의뢰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감찰관실 소속 검사 2명도 ‘수사 의뢰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류 감찰관은 이날 본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지난 17일 법무부 감찰관실 소속 평검사 2명이 대검을 찾아가 윤 총장 대면 감찰을 시도했을 당시에도 류 감찰관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후 류 감찰관은 사전 보고도 없이 윤 총장 감찰을 시도한 박 담당관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 6명도 이날 위원회를 건너뛰고 징계위를 열려는 추 장관의 절차를 무시한 윤 총장 징계 시도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 위원들은 이날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다음 달 2일 전에 감찰위원회 회의를 먼저 열어야 한다”며 회의 소집 요청서를 법무부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감찰위 회의가 열릴 경우, 추 장관의 ‘윤석열 징계’ 계획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9명으로 구성된 법무부 감찰위는 6명 이상이 교수 등 외부인들로 채워져 있다. 추미애 법무부는 지난 3일 ‘중요 사항 감찰은 법무부 감찰위원회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법무부 감찰 규정 제4조를 ‘감찰위원회의 자문을 받을 수 있다’로 바꿨다. 감찰위를 건너뛰고 본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징계위에서 ‘윤석열 징계’를 관철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많았다. 일부 법무부 감찰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감찰위원장을 비롯해 어떤 감찰위원들도 법무부에서 규정을 바꾼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추 장관의 검찰총장 직무 정지 결정과 그 후속 조치들과 관련, 법조계에선 또다시 “무(無)법부 장관 추미애”라는 말이 나왔다. 관련자에 대한 조사나 감찰을 하기도 전에 윤 총장을 직무 정지시키고 징계 신청을 한 데 이어 압수수색을 했고, 그 이후에야 수사 의뢰를 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을 쫓아내기 위해 순서와 절차를 거꾸로 밟은 것이다.

대검 감찰부가 지난 25일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한 것도 위법 소지가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은 추 장관이 윤 총장 직무 정지의 여섯 가지 이유 중 하나로 들었던 ‘판사 사찰’ 의혹 보고서를 작성한 곳이다.

추 장관이 윤 총장 직무 정지를 발표한 건 24일 오후 6시 5분쯤이었다. 그런데 대검 감찰부는 25일 오전부터 바로 압수수색에 착수해 10시간 넘게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 PC를 압수해 포렌식(복원) 작업을 했다. 다수의 검사들은 “25일 영장 집행을 했다면 최소 24일 오전이나 그 이전에 영장을 청구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대검 감찰부가 추 장관이 24일 ‘판사 사찰’ 얘기를 처음 꺼내기도 전에 이 내용을 미리 알고, 영장을 작성해 청구했다는 얘기가 된다. 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차장도 배제하고 법무부와 대검 감찰부 사이의 사전 시나리오에 의해 불법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진보 성향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 출신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추천한 인사다.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 영장을 내준 판사는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아내가 운영하는 전시기획사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던 김동현 부장판사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무법천지라서 일일이 불법적 상황을 지적하는 것도 허망한 일”이라며 “일단 잡아넣고 증거 조작해 간첩 만들던 독재 시절 공안수사와 다를 게 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