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폐공사 직원이 5만원권 지폐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작년까지만 해도 100장을 풀면 60장꼴로 한국은행으로 돌아왔던 5만원권이 올 들어선 100장 중 25장만 겨우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 1차 확산이 있었던 지난봄, 일부 은행에선 5만원권 지급이 중단되는 등 ‘신사임당 품귀현상’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코로나가 더 심한 유럽의 고액권인 100유로보다 우리나라 5만원권 환수율이 더 많이 떨어진 이유는 뭘까. 혹시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숨어서는 아닐까.

30일 한국은행은 ‘코로나 이후 5만원권 환수율 평가 및 시사점’ 자료를 통해 이유를 분석했다. 한은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 현금을 많이 쓰던 대면(對面) 상거래가 크게 위축됐는데 우리나라 자영업 비중이 주요국보다 높은 점, 그리고 불안해진 사람들이 예비용으로 현금을 많이 쟁여놓은 것이다.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지하경제로 흘러들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봤다.

올 들어 10월까지 5만원 권종은 약 22조원어치가 발행됐다. 같은 기간 한은으로 환수된 것은 5조6000억원 남짓이다. 환수율은 25.4%. 발행 첫해인 2009년을 빼놓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환위기 때나 금융위기 때 같은 경기 위축 시기에는 화폐 발행액과 환수액이 동반 감소했었다. 이에 비해 코로나 이후에는 발행액이 늘어나면서도 환수액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시중 5만원권 수요가 많아 돈을 많이 찍고 있는데도 찍어내는 족족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은 발권기획팀 옥지훈 과장은 “제조업, 건설업 등의 타격이 컸던 과거 금융불안기와는 달리, 코로나로 인해 숙박·음식업, 여가 서비스업 등 대면 상거래 활동이 크게 위축됐는데, 이들 자영업종은 현금 거래가 타 업종보다 많은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한은 조사 결과 음식·숙박업종은 매출액 중 현금취득 비중이 18.6%로 제조업(2.2%)이나 건설업(0.9%)보다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약 25%로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7개국 평균보다 2배 높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국 중에서도 6번째로 많다.

100유로 이상 유로존 고액권 대비 우리나라 고액권인 5만원권 환수율이 훨씬 큰 폭으로 떨어진 모습. 5만원권 환수율은 지난해 60%에서 올들어 10월까지 25.4%에 머물고 있다./한국은행

또 거래적 용도의 수요보다는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비한 예비적 목적의 수요, 또 저금리 상황 속에 굳이 금융기관에 맡기기보다는 그저 가치저장 수단으로 가진 경우 등도 늘었다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고액권 대비 5만원권 환수율이 극히 낮아진 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한은은 5만원권이 발행된 지 11년차인 비교적 젊은 권종이어서, 구조적으로 화폐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저금리나 코로나 상황, 불안한 소비자들의 심리 등은 모두 비슷한 조건이지만, 화폐의 생애주기상 ‘성장기’ 화폐여서 시중 금융기관 등에서 공급해달라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100유로·500유로 등 유로존 고액권 환수율도 19.3%포인트 하락했지만, 우리나라만큼은 아니다.

옥 과장은 “화폐가 발행된 지 수십년이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면 신규 수요가 둔화하고 유통수요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