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신 불안감이 높아지면 먼저 맞는 것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통령에게 그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려 한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19일 대통령에게 첫 번째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라고 재우쳤다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 스스로 했던 약속이니 그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백신 불안감이 높아지면 먼저 맞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민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현 상황을 살펴보겠다. 우리나라는 이번 주 금요일, 2월26일부터 드디어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OECD 37개 나라 중 제일 마지막이다. 미국·영국·이스라엘 같은 OECD 32개 나라는 이미 접종이 상당히 진행됐고, 감염자 숫자가 크게 감소하는 등 효과가 나오고 있다.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도 지난주까지 접종이 시작됐고, 한국은 26일로 진짜 꼴찌다. “K방역 어쩌고 저쩌고” 할 때는 대통령 총리 여당 지도부가 나서서 자랑 자랑 하더니 ‘꼴찌 접종’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입을 벙긋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국민 불안감은 어느 정도일까. 질병관리청은 접종대상자 93.8%가 맞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조사 대상이 요양병원 관계자, 의료진 등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지난주 조사로는 ‘바로 맞겠다’는 응답은 45.8%에 불과했고, ‘지켜보겠다’가 45.7%나 됐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도 비슷했다. ‘반드시 접종하겠다’는 응답이 43%에 불과했고, ‘아마 접종받지 않을 것’이 14%, ‘절대 접종받지 않겠다’도 5%나 됐다. 그냥 전체적으로 보면, 백신 접종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국민이 40%쯤 되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민이 40%쯤, 그리고 부정적인 태도가 20%쯤 된다. 이것이 바로 문 대통령이 말했던 ‘국민 불안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먼저 맞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먼저 맞겠다’고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하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앞선 조사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문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백신을 맞겠다고 한 비율이 높았다. 20%p쯤 차이가 났다. 즉 “대통령이 좋으면 백신도 좋고, 대통령이 싫으면 백신도 못 믿겠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백신의 궁극적 목표는 집단 면역을 확보하려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좌냐 우냐, 여당이냐 야당이냐 문제도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가 면역력을 가져야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국민 80%가 백신 접종을 해야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백신에 대해 유보적인 국민들,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국민들까지 설득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을 실천하는 첫 걸음은 지난 신년회견 때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오는 26일 첫 접종이 시작되기 전에 대통령이 먼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 것이다.

지금 정권 사람들은 참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작년 12월 ‘백신 확보가 늦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자 “일부 언론이 상황을 왜곡했다”고 발뺌을 했다. 그마저 뻔히 속 보이는 거짓말처럼 되자 이번에는 “백신에 관한 전권(全權)은 질병관리청에 있다”면서 덮어씌우기를 했다. 며칠 뒤 어찌어찌 해서 백신을 좀 챙길 수 있는 듯 하자 이번에는 대통령이 전화를 해서 백신을 확보한 것처럼 쇼를 하고 보도 자료를 냈다. 국민을 이렇게 저렇게 해도 속아 넘어가는 ‘멍청한 마술쇼 관객’ 쯤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침에 속이고 저녁에도 속일 수 있는 원숭이쯤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기가 막힌 노릇이다.

다른 나라는 한국 지도자들처럼 비겁하지 않다. 올해 일흔한 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예순두 살 에델스타인 복지부장관과 함께 지난 12월19일 백신을 맞았다. 방송에 생중계도 했다. 바로 이 분들이다. 일흔여덟 살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일흔 살 대통령 영부인, 예순한 살 펜스 부통령, 여든한 살 펠로시 하원의장 등도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백신을 맞았다. 인도네시아의 예순한 살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자청해서 백신 접종 1호가 됐다.

이보다 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나라가 있다. 바로 영국이다. 우리나이로 올해 아흔여섯 살 엘리자베스 여왕, 백한 살인 부군 필립 공, 이 두 분도 올해 1월9일 백신을 접종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민이 궁금해 할 테니 접종 사실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금부터 63년 전인 1957년 소아마비 백신 개발 초기이던 그 시절, 아들인 아홉 살 찰스 왕세자, 딸인 일곱 살 앤 공주에게 백신을 맞게 해서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국민 불신을 없애도록 한 적도 있다. 정말 아무나 여왕인 것이 아니고, 아무나 국가 지도자인 것이 아니다.

비겁하고 부끄럽다는 말 듣지 않으려면 다음 사람들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호 접종을 해야 한다. 대통령, 여당대표,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복지부장관 등이다. 이른바 국가 국경일에 기념식 단상에 올라앉는 사람들, 혹은 맨 앞줄에 앉는 사람들, ‘3부 요인’, ‘5부 요인’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한다. 유승민 전 의원이 대통령에게 먼저 백신을 맞으라고 하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발끈해서 이렇게 반박했다.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이다.”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인가.” “국가원수는 건강과 일정이 국가기밀이고 보안사항이다.” “문 대통령을 모욕하는 건 대통령을 뽑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아마 정청래 의원도 지금은 아차 싶어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본인이 한 말 자체로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이냐’고 따졌는데, 이 말은 정부 여당에서는 백신 접종이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되지 못한 실험 단계라고 보고 있다는 자백을 한 것이나 같다. 또한 비록 그렇게 의도하진 않았겠으나, 요양병원 의료진은 위험을 감수해도 되지만 대통령은 절대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리는 부분도 지극히 오만한 발상이다. 아울러 다른 나라 대통령이나 여왕은 뭐 건강이 비밀이 아니고 다 공개돼 있어서 백신을 접종한 것이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원수 모독’이라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그걸 모른다면 한심한 노릇이다.

코로나는 지금도 위험한 상황이다. 확진자의 80%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감염 재생산 지수도 2주 연속 1.0을 넘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집단감염과 조용한 전파가 계속 되고 있다. 신규 감염자의 해외 유입도 끊이지 않고 있다. 3차 확산 기간 중에 치사율은 일본이 1.7, 미국은 1.8이었고, 세계 평균도 2.2였는데, 우리나라는 그것을 훌쩍 넘어 2.8까지 치솟았다. 영국·남아공·브라질 변종이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에 전파되고 있다. 정부는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할 것인지 여부를 외국 사례를 보고 결정하겠다느니 현장 의사에게 맡겨놓겠다느니 했는데, 정말 비겁한 태도라고 하지 수 없다. 세계 어떤 나라도 이처럼 비겁한 정책을 내놓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사실은 ‘1호 남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사랑의 열매’ 1호 기부자 되기도 했고, 뉴딜펀드에는 앞장서서 투자하기도 했다. 작년 봄 재난지원금을 살포할 때는 ‘대통령 1호 기부’ 여론을 띄웠다가 슬쩍 물러선 뒤 여당 지도부가 솔선수범하듯 자발적 기부금 쇼를 벌이고 사진도 찍고 했었다. 그런데 백신 접종에는 아무런 말들이 없다. 대통령은 공군 1호기 전용기를 타는 사람이다. 공군 1호기는 아무나 타는 게 아니다. ‘코로나 전쟁’에서 맨 앞에 설 줄도 알아야 한다. 공군 1호기 타는 사람은 백신 접종 1호가 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엄중한 책무가 따른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비겁하고 부끄럽다는 말 듣지 않으려면 다음 사람들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호 접종을 해야 한다. 대통령, 여당대표,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복지부장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