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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북정책, 싱가포르 합의 계승?…아전인수 경계해야

2021.05.04 21:05 입력 2021.05.04 21:08 수정

[기자메모]바이든 대북정책, 싱가포르 합의 계승?…아전인수 경계해야

지난 주말 미국이 공개한 대북정책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3일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외교적 해법과 단계적 접근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특히 미 당국자가 2018년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합의를 포함한 다른 합의들을 기초로 했다고 말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미국에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는데 미 당국자가 이를 언급한 것은 한국의 요구가 반영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만족해한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새로운 포뮬러(창의적 해법)’가 아니다. 외교적 해법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며 단계적 접근법도 이미 시도해봤던 방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노이 노딜’ 이후 강조해온 ‘포괄적 합의 이후 단계적 이행’과도 다르지 않다. 특히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언급한 것은 그 합의를 계승하고 정책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뜻이 아니므로 과도하게 무게를 둬서는 안 된다. 이전 정부의 합의를 공식적으로 뒤집지 않는 전통을 존중하고 동맹국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임을 보여주려는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만약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기로 작정했다면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지금과 같은 모양이 아니라 북한이 적극 호응할 수 있는 신뢰 구축 조치를 앞세웠어야 한다.

싱가포르 합의 이후 북·미는 비핵화가 먼저인지, 신뢰 구축 조치와 평화체제 논의가 먼저인지를 놓고 충돌했다.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이 같은 인식 불일치를 해소하지 않은 채 싱가포르 합의로 돌아가는 것은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 당국자가 싱가포르 합의를 언급했다고 해서 이 합의를 계승할 거라고 보는 것는 섣부른 판단이며, 한국의 요구가 반영된 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둔 채 발가락이 닮았으니 내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정부가 정말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인식한다면 중대한 정책적 오류를 빚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국의 요구가 반영됐는지 여부가 아니다.

바이든의 접근법은 북한의 핵위협을 단계적으로 감소시키고 그에 따른 보상을 매 단계마다 제공하는 작업을 반복함으로써 비핵화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작은 성과를 얻어내는 것은 쉽지만 비핵화에 이르는 길은 매우 길고 험난할 수밖에 없다. 도중에 중단된다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은 이 험난한 여정에 미국과 함께 동행해 종착점까지 완주하도록 독려하고 협력하고 감시할 길을 찾아야 한다.

이번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의미를 둬야 할 부분은 단계적 접근법이나 외교적 해법 추구나 싱가포르 합의 언급이 아니라, ‘최종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로 설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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