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미술회(高麗美術會)
반면 고려미술회는 고려미술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1924년 초부터 연구소를 운영하였다. 1924년 10월 고려미술원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관에서 두 번째의 동인 및 연구생 작품전람회를 가졌다. 청소년 미술학도를 대상으로 한 이 종합연구소의 실기지도는 처음에는 김은호(金殷鎬)와 변관식(卞寬植)이 전통 수묵화와 채색화를, 서양화부의 소묘와 유화는 정규익, 박영래, 강진구, 나혜석, 이종우(李鍾禹) 등이 맡았으나, 얼마 뒤부터는 김은호와 이종우가 전임으로 연구생들을 지도하였다. 1925년에 이르러 김은호는 동경(東京)으로, 이종우는 파리로 각각 유학을 떠나게 되자 연구소는 문을 닫게 되고, 고려미술원 자체도 없어졌다.